[경제직필]대전환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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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경제직필]대전환의 시대

by eKHonomy 2020. 9. 16.

국가부도위기로 온 나라가 난리통이던 1997년 12월11일, 일본 교토에서 개최된 지구온난화 방지 교토회의 제3차 당사국 총회에서 교토의정서가 채택됐다. 당시 다행히도(?) 우리나라는 온실가스 감축의무에서 면제됐다. 개발도상국들과 같은 대우를 받은 것이다. 2012년 만료되는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새로운 협의에서 선진국 수준의 감축의무가 요구될 것은 당연했지만 우리 정부의 대응은 안이했고 이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담론이 될 만큼 국민의식도 성숙하지 못했다.

 

같은 시기 독일·영국을 비롯한 많은 유럽 선진국들은 탈탄소와 에너지 전환에 대비해 재생에너지 기술개발과 확산에 박차를 가했고 에너지 전환의 구체적 로드맵과 실행방안을 세웠다. 그 결과 독일의 경우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풍력, 수력 등 재생에너지 비율이 40%대에 이르는 성과를 거뒀다. 우리의 경우 10%에도 한참 못 미쳐 세계 최하위권이다. 에너지 전환을 위한 자연적, 지정학적 여건 역시 좋지 않다. 지금이라도 대전환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과 과감한 투자에 나서지 못한다면 다른 선진국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에너지 전환이라는 걸림돌 때문에 수출 길이 막히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에너지 전환과 탈탄소의 멀고도 험한 여정은 피할 수 없다. 이제라도 어떻게 과감한 투자를 유도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7월 발표된 정부의 ‘한국판 뉴딜’과 최근 발표된 뉴딜금융 지원 방안은 큰 의미가 있다. 비슷한 방식의 그린펀드가 독일·영국 등에서 에너지 전환과 재생에너지 개발에 활용됐다. 성공적인 펀드 조성을 위해 적정 수익을 보장해주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우리도 이 같은 펀드를 고속도로·터널 등 인프라 투자를 위해 활용해왔다.

 

이번에 발표된 ‘뉴딜펀드’의 경우 국민참여형이란 점이 중요한 특징이다. 정부재정과 금융권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충분한 투자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고심한 결과로 보인다. 국민참여는 채권 투자로 이루어지고 일정한 수익을 보장받도록 설계될 것이라 한다. 그래서 국민의 세금으로 펀드에 참여한 투자자에게 부당한 수익을 일방적으로 보장해준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에너지 전환과 재생에너지 개발은 공공성이 큰 성과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투자한 사람들이 창출하는 성과는 온실가스 저감을 통해 모든 국민들이 그 혜택을 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 세금을 이용한 수익보장이 불공정하다고만 보기는 어렵다.

 

에너지 전환과 재생에너지 개발을 위해 정부가 제시한 목표가 성공적으로 달성되려면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개별 경제주체들에 부여하는 사회적 협의 역시 병행돼야 한다. 산업별 그리고 부문별로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여하고 그 수준도 단계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한 법적 혹은 제도적 방안에 대한 논의가 부족한 것은 큰 문제점이라 생각한다. 개별 경제주체들의 감축의무가 현실화돼야 재생에너지와 탄소저감기술에 대한 충분한 수요가 창출되고 이러한 수요를 기반으로 지속 가능한 녹색산업생태계가 활성화될 수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사태와 경제위기는 세계 경제의 대전환을 요구한다. 이 위기가 가져온 산업별, 기업별, 기술특성별 명암은 뚜렷하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있을 다양한 경제적 지형 변화가 필연적이다. 특히 원격 경제활동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고 이를 뒷받침할 정보통신 인프라, 디지털화와 자동화를 위한 기술·부품·장비에 대한 수요는 커질 것이다.

 

다행히 이런 변화를 이끌 핵심 부문에서 우리 경제의 국제적 위상은 높다. 정보통신 인프라와 통신 및 전자산업이 그렇고 디지털화와 빅데이터, 소프트웨어, 인공지능 부문은 다른 경쟁국들에 비해 다소 뒤처져 있다. 우리의 강점을 살리고 약점을 보완한다면 대전환 시대의 국가발전을 견인할 동력으로서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나라들이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어려움을 겪는 지금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다면 경쟁국들과의 초격차를 만들 수 있고 우리 경제가 재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할 좋은 기회다.

 

이러한 대전환의 과정 속에서 전통적 고용관계보다는 새로운 고용관계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자동화와 정보통신 네트워크 기반 경제활동이 강화되면서 플랫폼노동과 시간제·계약직 노동이 빠르게 확대되는 현상이 벌써 나타나고 있다. 전통적 고용관계로 설계된 사회복지와 안전망의 근본적 변화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복지 사각지대는 커질 수밖에 없다. 촛불혁명이 탄생시킨 현 정부가 강조했던 “노동 존중 사회”를 위한 고민과 포용적 복지국가로의 전환이 더욱 강조돼야 하는 이유다.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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