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10일 지면게재기사-
불평등 문제의 세계적 석학인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최근 ‘브라만 좌파 대 상인 우파’라는 논문에서 1948~2017년 프랑스·영국·미국의 정치를 분석한 바 있다. 피케티는 불평등을 분석하던 자신의 종래의 연구방식을 뛰어넘어 이 논문에서는 불평등의 해소를 가로막는 정치지형의 변화를 분석 대상으로 삼고 있다. 브라만은 인도에서 최상층인 ‘지식인 엘리트’를 지칭하며 상인은 ‘비즈니스 엘리트’를 지칭한다. 브라만 좌파의 경우 원뜻에 더 충실한 말은 아마도 ‘지식인 좌파’일 텐데 ‘강남 좌파’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피케티는 ‘브라만 좌파’를 비난받아야 할 위선자라는 뜻으로 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보수언론과 보수정치인들은 강남 좌파 혹은 브라만 좌파를 위선자로 색칠하고 있다.
피케티의 분석에 의하면 1950~1960년대에 사회당, 노동당 그리고 민주당 등 각 나라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정당에 투표하는 사람들은 주로 저학력과 저소득층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고학력의 지식 엘리트 계층이 진보정당에 더 많이 투표하는 반면, 부자 엘리트는 여전히 보수정당에 투표한다. 따라서 이제 진보정당은 전통적인 지지층이었던 노동자, 중하류층의 유권자를 더 이상 대변하지 않는다. 결국 각국의 정치지형은 브라만 좌파와 상인 우파가 서로 대립하는 구도(피케티는 이를 ‘다층적 엘리트정당 체제’라고 부른다)로 바뀌었기 때문에 불평등 완화에 미온적이라는 것이다. 정당들이 모두 엘리트들에 의해 ‘포획’되다 보니 대다수 유권자는 자신을 대변하는 정당이 없다고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극우정치인들은 그 틈새를 파고든다.
나는 피케티의 결론에 많은 부분 공감을 한다. 특히 좌파정당들이 무분별하게 추진한 세계화와 금융자유화에 대한 비판은 경청할 만하다. 하버드대학의 경제학자 대니 로드릭 역시 미국의 진보들은 불평등의 증가를 초래한 정책, 즉 세계화와 금융규제철폐 같은 정책의 공범이었으며, 결국 지난 20년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나는 피케티의 논의에 빠진 한 가지를 추가하고 싶다. 그것은 바로 ‘빈민 우파’ 혹은 ‘강북 우파’의 존재이다. 이들의 존재는 불평등 심화에 지식인 좌파의 존재만큼 아니 그보다 오히려 더 중요하다. 전통적으로 정치학자들은 정당의 이념을 나눌 때 ‘경제적 차원’을 중심적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현대정치를 잘 살펴보면 이민 문제, 인종주의, 젠더 문제, 지역 문제, 반공이데올로기 등 ‘비경제적 이슈들’에 의해 각국 좌우정당들의 지지기반이 재조정된다. 미국의 흑인들이나 라틴계 미국인들이 미국의 민주당을 강력히 지지하는 것, 그리고 저임금, 저학력의 남부 백인유권자들이 공화당을 강력히 지지하는 것은, 단지 소득이나 부와 같은 경제적 변수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없으며, 공화당이 선거 때마다 끊임없이 사용하는 ‘인종 카드’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공화당이 사용하는 ‘인종 카드’는 의도적으로 소수인종에 모멸감을 줌으로써 남부 백인들의 지지를 반사적으로 유도해 내는 데 목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더라도 보수정당은 선거 때마다 ‘지역 카드’와 ‘반공 카드’를 공격적으로 사용해 왔고 그럼으로써 가난하고 저학력의 고령층 유권자들을 자신들의 강력한 지지세력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사실 2차원으로 정치적 경쟁을 분석하면 ‘강남 좌파’와 ‘강북 우파’는 동전의 양면처럼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나는 몇 년 전 일련의 논문들과 저서에서 미국에서 인종 카드의 사용은 불평등 완화를 위한 정책 시행을 그만큼 더 어렵게 만들고 진보정당으로 하여금 경제적 이슈보다 비경제적 이슈에 더 집중하도록 만드는 효과가 있음을 보인 바 있다. 피케티는 좌파들이 무분별하게 추진한 세계화로 인해 빈민 우파들이 생긴 걸로 보고 있지만 이들의 존재는 세계화로 생긴 단순한 반동이 아니라 그 훨씬 이전부터 존재한 현상이다.
빈민 우파들의 존재에 직면하여 진보는 무엇을 할 것인가? 진보는 무엇보다 불평등 완화에 초점을 맞춘 강력한 진보적 의제를 채택해야 한다. 그래야만 비경제적 이슈에 포획된 저임금, 저학력의 유권자들을 통합하고 불평등을 물리칠 수 있는 드넓은 연대를 구축할 수 있다. 불평등 완화에 미온적일수록 비경제적 이슈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또 지식인 좌파임을 부끄러워하기보다 자신들의 이익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대표한다는 것을 유권자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사실 역사적으로 거의 모든 진보적 개혁은 초기에는 브라만 좌파들에 의해 주도되었는데 그들이 모두 위선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선거가 다가온다. 빈민 우파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강력한 경제개혁과 불평등 완화 정책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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