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직필]금융은 문화다!
본문 바로가기
경제직필

[경제직필]금융은 문화다!

by eKHonomy 2019. 10. 24.

요즘 금융시장에 두 가지 핫 이슈가 발생했다. 국내 헤지펀드 업계 1위 라임자산운용의 메자닌 헤지펀드가 고객의 환매 요청에 제대로 응하지 못하면서 미상환 잔액이 무려 2조원대에 육박하고 있다. 두 번째 이슈는 은행권에서 판매한 독일 등 주요국 국채 금리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사고다. 투자자금 전액이 거의 날아갔거나 날아갈 예정으로 투자가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전혀 무관해 보이는 이 두 사건은 한국의 낮은 금융투자문화를 보여준다. 라임자산운용의 펀드 미상환 문제와 유사한 많은 사건이 IMF 외환위기 때에도 발생했다. 불법 파킹 거래, 돌려막기를 통한 수익률 평준화 등은 1990년대 국내 투자신탁사들이 흔히 저지른 불법 거래인데 이번에도 사건의 빌미를 제공했다. 1997년 국내 증권사와 일반 기업 등이 인도네시아 국채에 투자했던 다이아몬드펀드는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동남아시아 국채에 투자하는 펀드였다. 그러나 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하면서 대규모 손실을 입었다. 또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발생했던 키코(KIKO) 통화옵션계약도 문제가 되고 있는 DLF와 유사한 상품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상품들의 공통점은 외국계 투자은행의 위험은 일정 규모로 제한하고, 상대방(한국 투자가)의 손실규모를 무제한으로 하는 장외파생상품(OTC) 거래였다. 장외파생상품은 거래소가 아닌 시장 밖에서 거래 당사자 간의 사적 계약 형태로 감독이 어렵다는 특성이 있다.


이 두 가지 사건을 되돌아보면, 먼저 금융기관은 위험(리스크)을 적절히 파악하고 이를 고객에게 적극적으로 공지하고 설명했어야 한다. 회사 차원의 리스크 관리와 투자 관련자들의 탐욕을 적절히 통제하지 못했다. 또한 고객도 리스크가 높은 상품의 구조를 정확히 이해했어야 한다.


그간 정책 당국은 유사한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다양한 규제 장치를 마련해 놓았다. 그러나 해당 금융기관과 업무 담당자는 자신들의 이해에 의존한 의사결정을 내렸고, 투자자 역시 위험을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 제도는 이미 존재하지만 그 제도를 일상적 행위 규칙으로 연결시키지 못한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금융은 경제의 혈맥이다. 인체로 따지면 혈액과 혈관을 총칭하는 심혈관계와 같은 존재다. 심혈관계 질환은 어린 시절 생활 습관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고지방 음식을 다량 섭취하고, 운동을 게을리하면 고혈압, 당뇨, 신장 질환 등 다양한 합병증이 발생해서 결국은 사망에 이른다. 마찬가지로 금융은 사회 모든 계층의 경제생활 속에서 합리적인 금융 행위가 생활 습관으로 정착될 때 제 기능을 수행하고 경제 발전에 기여한다. 선진국의 경우 지금 한국이 겪고 있는 금융의 난맥상을 오랜 기간 경험하면서 금융시장의 제도와 규칙을 만들었다. 다르게 해석하면 금융관련 합리적 투자 관행이 생활문화로 자리 잡아야만 선진국의 자격 요건이라는 뜻이다.


그동안 한국은 ‘동북아시아 금융허브’, 한국판 ‘골드만삭스 육성’ 등 수많은 슬로건으로 금융시장 발전을 꾀했었다. 이런 제도와 정책들은 당연히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다. 그러나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제도 도입뿐 아니라 사회문화적인 기반 조성과 생활 습관으로 정착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제도만 만들었을 뿐 과정과 합리적인 금융문화 육성에는 무관심했었다.


향후 경제성장을 이어가기 위해선 경제와 금융에 대한 깊이 있는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입시교육에 함몰돼 경제와 금융, 그리고 투자에 대한 교육은 아예 없다. 이렇게 성장한 젊은이들이 ‘투기’와 ‘투자’를 구별하지 못하고, 엄청난 변동성이 지배하는 가상통화나 주식시장에서 온라인 게임하듯이 단기 수익 추구에 몰두하고 있다. 10여년 전 한국의 옵션 거래량이 세계 1위라고 자랑했던 한국거래소도 별반 다르지 않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매우 쉽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생활하는 과정에서 합리성에 기반한 금융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한국의 금융은 여전히 우물 안에 갇혀 있을 것이다.


20여년 전과 유사한 라임자산운용 문제, 10여년 전의 KIKO 사태와 별반 다르지 않은 DLF 사태는 여전히 한국의 금융투자문화가 후진적이라는 방증이다. 양적으로만 보면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고 있다. 그러나 질적인 측면의 금융투자문화 수준은 여전히 1만달러 정도가 아닐까? 라임자산운용 사건으로 중소기업의 자금조달이 더 어려워지고 벤처기업의 기업 공개에도 영향을 줄 듯하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정책자금을 퍼붓는 것도 중요하지만, 금융문화의 선진화 교육, 청소년에게 경제·금융·투자 철학을 가르치는 것이 먼저일 듯하다.


<홍성국 혜안 리서치 대표>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