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하가 머지않은 듯하다. 정부와 금융시장은 이미 금리인하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종합주가지수가 급등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혹자는 주가지수 급등이 사내유보금의 활용을 강제하는 정부 정책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하지만, 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적어도 정부 발표에 의하면 사내 유보는 배당 못지않게 근로자의 임금 인상 보전, 심지어 최근에는 동반성장 목적으로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 때문에 자본시장이 달아오를 수는 없다. 결국 금리인하 때문이다.
필자는 작년부터 금리인하를 주장해왔다. 물가가 바닥을 기고 있기 때문이다. 3년 평균 물가상승률 3%는 고사하고 물가목표의 하한인 2.5%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줄곧 계속되는데도 금리를 동결하는 것은 한은법의 의무를 저버린 위법한 것이다. 그래서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 그러나 전제 조건이 있다. 종전의 물가안정목표제하에서 한은은 오직 물가안정에만 신경 쓰면 되었다. 그러나 2011년 한은법이 개정되면서 한은은 금융안정의 책무도 부담하게 되었다. 따라서 한은은 물가안정 책무를 달성하기 위해 금리를 인하해야 하지만, 그것이 금융안정을 저해하지 않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이것이 한은법의 주문사항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단순무식”한 금리인하만 가지고는 금융안정을 담보하기 어려운 국면으로 흘러가고 있다. 가계부채가 경제를 짓누르는 상황에서 정부가 “부채 증가에 의한 성장 정책”을 빼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 가계가 선뜻 부채 증가를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금리가 인하된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 이제는 부채의 “가격”이 싸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박한 금리인하는 우리 경제를 “빚잔치”로 초대하는 초대장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기준금리를 인하를 놓고 신경전을 벌여온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가진 첫 공식 회동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출처 : 경향DB)
그렇다면 한은은 어찌해야 하는가. 금융 불안정을 핑계로 계속 금리를 동결하고 물가안정목표를 위반할 것인가. 안된다. 그것은 위법이기 때문이다. 한은이 지금 해야 하는 일은 금리는 인하하되, 그것이 금융 불안정으로 귀결되지 않도록 다양한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다.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정부에 부채 축소 정책을 적극적으로 주문해야 한다. 정부는 지금 가계가 빚을 내서 강남3구 집을 사라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가계가 빚내서 덜컥 집을 사면 소비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옛날처럼 이자만 갚는 것도 안된다.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때문에 요새는 대부분 장기 원리금 분할상환 방식으로 대출이 나가기 때문이다. 가계를 하우스 푸어로 내몰고 나서 소비증가와 내수활성화를 고대할 수 있겠는가. 강남3구 집 몇 채 팔리고 이 “반짝 잔치”가 끝나고 나면, 그때 우리 경제는 내수활성화는 고사하고 가격이 하락 중인 부동산에 목을 매고 있는 형국이 될 것이다.
내수가 활성화하려면 가계가 소비를 해야 한다. 가계가 소비를 하려면 소비여력을 늘려주어야 한다. 새로 빚을 내서 집을 사라고 하는 것은 소비여력을 늘리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로 기존 빚을 줄여주고, 남아 있는 빚의 상환 부담을 경감시켜주어야 소비여력이 늘어난다. 한은의 금리인하는 “남아 있는 빚의 상환 부담 경감”에 활용되어야 하지, “새로운 빚을 만들어 내는 마약”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그래서는 내수활성화도 안되고 금융안정도 안된다.
왜 꼭 한은이 이런 일을 해야 하는가. 한은법에 따라 금융안정의 책무를 지고 있기 때문이다. 꼭 법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최경환 부총리나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이런 일을 못할 사람이라는 것을 이미 만천하에 증명했다. 지난 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대통령 주재로 열렸던 확대경제관계장관회의가 그 좋은 예다. 이 자리에서 금융기관의 “보신주의”에 대한 대통령의 질타에 최 부총리나 신 위원장 누구도 금융기관 위험관리의 필요성과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못했다. 그러니 한은이 나서라는 것이다. 거시건전성분석국장이 논리적으로 말하고 한은 총재가 정치적으로 풀어야 한다. 가만히 금리만 내리겠다면 그것이야말로 “보신주의”다.
전성인 | 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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