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예산 국회의 시절이 돌아왔다. 그러나 그 느낌은 사뭇 다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산 국회의 꽃은 지출 부문이었다. ‘형님 예산’, ‘쪽지 예산’이 난무하던 기억은 모두 재정 지출과 관련된 것이었다. 세수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부문이었다. 경제는 자동적으로 성장하는 것이고, 세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저절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게다가 많이 들어왔다. 매년 세계잉여금이라는 이름으로 세금이 계획보다 더 걷히고, 이를 쓰기 위한 정기적인 행사가 추경(추가경정예산)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풍속도가 바뀌었다. 형님 예산, 쪽지 예산이 난무하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국민들의 관심이 점점 세수 쪽으로 옮겨가게 된 것이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찬밥’이 갑자기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뜨거운 감자’가 된 것이다. 그럴 만하다. 세수는 자동적으로 들어오기는커녕 마른행주를 쥐어짜고 연예인을 털어야 겨우 걷히는 수준이 됐다. 3년 연속 세수추계가 몇 조원씩 잘못되는 경험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추경은 돈을 쓰기 위한 행사가 아니라 국채를 발행해서 돈을 메꾸기 위한 행사로 변질됐다.
복지 수요의 폭증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사회적 약자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해 주지 못하는 현실은 아프지만, 그렇다고 복지비용을 젊은 사람들과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우리의 후손들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이 과연 ‘영광된 조국’을 물려주는 길인지 의문이 없을 수 없다.
그럼 해결책은 무엇인가. 세금을 더 걷는 방법밖에 없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증세를 정면으로 마주 대해야 한다. 그것을 회피하는 것은 우리 후손에게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을 떠넘기는 파렴치한 짓에 다름 아니다.
어떻게 세금을 더 걷어야 하는가? 우선 국민적 공감대를 도출한 후, 실질적으로 세수 증가를 가져올 수 있는 부분에 손을 뻗쳐야 한다. 먼저 국민적 공감대를 도출하는 부분부터 살펴보자.
국민이 본격적인 증세에 동의하기 위해서는 씀씀이가 정당해야 하고, 직접세 방식으로 최대한 세금을 거두어들여도 돈이 모자라다는 것을 보여야 한다. 사회적 약자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해 주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는 것은 정당한 목적이다. 문제는 현재 직접세 방식으로 충분히 세금을 걷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아니다. 소득세의 경우 분리과세를 원칙적으로 종합과세로 일원화하고 누진체계도 재검토해야 한다. 법인세의 경우 각종 감면을 없애고 세율도 인상해야 한다. 이런 직접세 제도의 개편은 직접적인 세수 증대 목적 외에도 그 다음의 정책 과제인 신규 세원 발굴이나 간접세 인상을 위한 정치적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선결조건이다.
올해 1~5월 세수 진도율 (출처 : 경향DB)
이런 직접세 제도 개편을 하더라도 물론 돈은 당연히 모자랄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세원을 발굴하거나 간접세율을 조정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필자는 선결조건이 충족된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세수 확대 그 자체를 위한 증세 논의가 시급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방법은 대략 두 가지 정도로 압축될 수 있다.
첫째 방식은 부가세율 2%포인트 인상이다. 이 방법은 사실 많은 조세전문가들이 늘 사석에서 하는 말이다. 다만 어느 정권도 권좌에서 내쫓길까봐 감히 이 단어를 입 밖에 내지 못할 뿐이다. 국민적 공감대와 정치적 정당성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두 번째 방식은 부동산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이것도 감히 꺼내기 어려운 얘기다. 특히 종부세 트라우마에서 자유롭지 못한 야당은 더욱 가슴이 콩닥콩닥할 얘기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불평등하게 분배되어 있는 자산인 부동산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그렇게 터무니없는 주장은 아니다. 특히 가계에 비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부동산을 많이 가지고 있는 기업 부문을 집중할 경우 세수 증대 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정부에는 재정 전문가가 참 많이 포진해 있다. 그러나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세법개정안에는 재정 전문가의 문제의식도, 손맛도 찾아볼 수 없다. 그냥 적당히 때우고 부담을 미래로 떠넘기자는 것인가.
전성인 | 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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