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금융민주화’의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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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기고]‘금융민주화’의 출발점

by eKHonomy 2012. 12. 16.

양준호 | 인천대 교수·경제학


이른바 ‘금융소외자’가 날로 늘고 있다. 신용등급이 낮다는 이유로 제1금융권으로부터 급전을 빌리지 못해 불법 추심과 고금리가 횡행하는 사금융에 손을 대면서 이들의 삶은 너무 힘들어졌다. 


통계를 보면, 신용등급 6등급 이하의 ‘금융소외자’는 무려 1200만명에 달한다. 정부는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신용회복지원, 저금리 전환대출, 채무재조정 등의 정책을 나름 시행해왔으나, 정작 수요자는 이러한 정책과 제도를 인지하지 못한 채 그들의 빚과 고통만 늘고 있으며, 경기침체 및 내수부진으로 자영업자, 은퇴자, 청년층의 실질소득이 하락하고 계층 간 소득불균형이 심화되면서 자금력과 신용도가 낮은 계층의 서민금융에 대한 수요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금융소외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지 않으면 경제활력은 상실되고 또 저신용계층의 경제력이 계속 악화되는 악순환이 발생하여 거시경제 전반의 안전성이 훼손될 뿐만 아니라 소득 및 자산 양극화 현상과 맞물려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불법 대부업 피해자의 눈물 (출처; 경향DB)


현재 서민금융의 실태를 보면 각종 기관들의 관련 견해가 통일되지 못한 채 중구난방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실효성이 매우 낮다. 지원 대상의 신용도와 소득 기준 및 지원 목적 등만 보더라도 제도권 내 민간 서민금융기관과 정부가 서로 다른 인식을 보이고 있고, 또 동일 금융소외자에 대한 중복지원 발생의 가능성, 유사 성격의 사업에 대한 과다 지원이나 필요사업에 대한 과소 지원과 같은 자원 배분의 비효율성과 불평등성이 초래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시장논리로 풀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으나, 우리 서민금융시장의 만성적인 초과수요 현상과 공급자 우위 구조가 해소되지 않는 한 시장은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결국 정부가 풀어나가야 하는 일이다.


복지 차원에서 제공하고 있는 정부기관의 서민금융은 저소득층의 생계형 창업, 자활 및 생계비 지원 등에 활용될 수 있지만 일시적 성격의 정책금융 지원에 불과하다. 또 민간단체의 대안금융은 신용도를 고려하지 않는 대신 대출 시 사업성에 입각한 사전심사와 사후관리를 강화함에 따라 높은 비용을 부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정부의 복지와 서민금융 정책을 그리고 다양한 서민금융 지원체계를 통합하여 자금조달, 무담보 소액대출, 채무조정, 저금리 전환대출에 대한 보증사업, 취업지원 및 교육지원 서비스 등의 금융소외자에 대한 자활지원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제공할 수 있는 정책금융 기금을 설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기금은 다양한 공적 서민금융 지원 주체 간의 연계 강화 및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지원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장기저리 무담보대출과 저리 수신체계로 인해 적자 운영 가능성이 크고 또 유동성 확보도 어려울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공적 차원에서 운영되어야 한다. 


또한 이 기금은 저소득층에 맞는 대출상품 및 이율 구성과 자활사업의 효율적 연계, 경험과 학습에 의해 노하우가 축적된 인적자원과 인프라가 필요하기 때문에 비슷한 정책 서비스를 제공해온 기존 공적기관에 기금 운영을 위탁하면 새로운 조직 신설에 따른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기금의 재원은 기존 공공기관의 출자금을 최대한 활용하고, 관련법을 통해 금융회사의 출자를 유도하며, 세법 개정으로 사회적 잉여금이 각종 기부금 등으로 출자될 수 있도록 하며, 나아가 한국판 ‘지역재투자법’ 조항을 관련법에 설치하여 출자금을 유도하면 충분히 조달할 수 있다. 기금 마련을 위한 새 법을 제정하기보다 공공기관의 관련법을 활용하면 효율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


1200만 ‘금융소외자’들은 지금도 울고 있다. 일회성의 시혜적 정책이 아닌 서민들이 스스로 자활할 수 있을 때까지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정책만이 그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다. 금융소외자를 위한 ‘공정금융’과 ‘회복금융’으로 이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금융민주화’의 출발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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