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집단 총수일가의 사익편취행위 규제가 시행된 지 3년이 지났다. 이 제도는 총수일가 지원이나 불법승계를 목적으로 대기업 계열사 간 일감몰아주기 등 내부거래가 있을 때 효과적으로 대처할 방안이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 2013년 8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도입됐다.
대기업 일감몰아주기는 기업이 추구하는 효율성 증대행위로서 총수일가 사익편취와는 무관하다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 주장은 계열사 간 내부거래 중 효율성이 인정되는 일부 행위에서만 타당하다. 오히려 일감몰아주기는 총수일가의 부를 교묘하게 승계하는 수단으로 사용돼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 강화에 기여하고 있다. 전형적 중소기업 업종으로 분류되는 광고대행업·시스템통합(SI)업·물류업을 비롯해 전단 인쇄업이나 극장 내 팝콘 판매업까지 대기업이 진출해 사익편취를 추구하고 있다.
공정거래법상 사익편취행위 규제는 ‘터널링’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경영학에서는 지배주주가 회사 이익을 자신의 이익으로 편취하는 행위를 터널링이라고 부르는데, 땅굴을 파서 물건을 빼돌리는 것처럼 은밀하고 교묘하게 이뤄져 붙은 이름이다. 일감몰아주기는 터널링을 위해 동원되는 은밀한 수단으로, 2007년 공정거래위원회가 부당지원행위로 규제한 현대 글로비스 사건이 대표적이다. 2001년 현대자동차 그룹 총수와 그의 자녀가 100% 출자한 물류회사 글로비스는 놀랍게도 설립된 후 2년 만에 시장 2위 사업자로 급부상하고 4년 만에 1위 사업자로 등극했다. 마술 같은 성장의 비결은 바로 현대차·기아차 등 계열사들이 일감을 몰아주면서 유리한 거래조건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건을 기존 부당지원행위로 규제할 경우, 공정위가 행위의 경쟁제한성을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점을 반영한 것이 공정거래법상 사익편취행위 규제이며, 일감몰아주기뿐만 아니라 ‘정상적 거래보다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는 행위, ‘회사에 상당한 이익이 될 사업기회를 제공하는 행위’도 함께 규제하고 있다.
규제 도입에도 사익편취행위 의심 사례는 여전하다. 현대증권이 제록스와 복합기 임대차 계약을 직접 체결하지 않고 총수일가 회사인 HST를 중간에 끼워 거래하면서 10% 이상 마진율을 보장해준 사건, 대한항공이 총수일가 회사인 싸이버스카이에 기내 면세품 구매 예약 웹사이트 운영을 맡기면서 별다른 역할이 없는 이 회사에 인터넷 광고수익을 지급한 사건 등이다.
지금 필요한 논의는 규제 도입 타당성이 아닌 규제 수준이나 방식의 적정성 문제다. 규제가 도입된 지 3년이 된 시점에서, 과연 현행 규제가 총수일가 사익편취를 제대로 차단하고 있는지, 또 다른 형태의 보이지 않는 터널이 뚫리고 있지는 않은지 면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특히 사익편취행위 규제가 적용되는 대기업집단 범위가 적정한지 문제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현행 규제는 계열사가 상장회사인 경우 총수일가가 지분 30% 이상을 보유하고 있어야 적용되는데, 이는 대기업집단이 지분조정을 통해 규제를 빠져나갈 수 있는 헐거운 요건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규제대상 상장회사 지분율 기준을 20% 수준으로 대폭 내리는 등 더 엄격하고 효과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김윤정 | 한국법제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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