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진흥, 좀 줄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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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기고]진흥, 좀 줄이자

by eKHonomy 2014. 12. 25.

초등학교 시절 전교에서 공부 잘하기로 유명한 친구가 있었다. 그러나 이 친구는 중학교 이후 계속 성적이 떨어져 고등학교 때는 중간 수준에 그치게 됐다. 중학생이 된 친구를 그의 어머니가 계속 학습지도를 하려 했으나 성공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이 친구는 자기주도 학습능력이나 학습동기를 갖추지 못한 것이다.

정부와 시장의 관계도 그러하다. 경제발전 초기에는 정부가 시장 옆에 앉아 진흥, 육성, 촉진, 지원하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경제가 성숙단계에 가면 정부의 시장간섭은 줄어야 한다. 부모가 아이를 놓아 주듯이 말이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 정부는 대학생 아이의 공부에 간섭하는 과보호 부모를 보는 것 같다. 민간에 대한 과도한 진흥을 그만두어야 한다.

민간시장에 간섭하는 정부의 보이는 두 손 중 한 손에는 재정을 통한 진흥, 다른 손에는 규제가 있다. 그러나 진흥축소는 규제축소보다 더 어렵다. 규제는 피규제자가 철폐를 주장하지만 진흥을 줄이자고 주장하는 계층은 없기 때문이다. 먼저 정치권은 임기 중 어떻게든 기업을 지원해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이루고자 한다. 과잉진흥의 장기적 부작용은 다음 정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산업부, 국토부, 농식품부, 미래부, 문화부 등 진흥이 주요 업무인 정부 부처는 일의 성과를 급하게 내기 위해 민간을 진흥하고자 한다. 심하게 말하면 그 과정에서 열심히 일하는 티를 내고 민간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해 퇴임 후 자리를 보장 받으려는 생각도 없진 않다.

공공기관의 이름에서 한국, 공사, 공단을 제외하면 가장 흔한 단어가 진흥이라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공공기관은 진흥의 창구역할을 수행한다. 당연히 진흥기능이 커지면 조직과 인력도 늘어난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기업과 국민이 이러한 정부의 진흥기능을 즐긴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정치권-정부-공공기관-국민의 4자 담합의 결과로 정부의 진흥기능은 거의 매주 새로 생겨난다. 진흥기능은 천적이 없는 생태계의 불가사리 같은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정부의 민간에 대한 진흥기능은 과도한 수준에 이르렀다. 2013년 기준 국고보조금은 2031개 사업에 52조원이며 국세감면액은 33조원, R&D지원 정부출연금이 31조원이다. 2014 예산규모가 342조원이니 그 규모를 알 수 있다. 진흥기능은 두 가지 형태가 있는데 모두 큰 문제가 있다. 첫째, 모든 중소기업에 공통 제공되는 무차별적 진흥정책이다. 이런 지원 방식은 상대적으로 한계기업에 더 높은 혜택이 가는 결과를 초래해 기업 간 옥석 가리기를 지연시킨다. 결국 망해야 할 기업이 정부 지원으로 연명하게 된다. KDI 연구에 의하면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지급하지 못하는 좀비기업이 자산기준으로 1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좀비기업은 건전기업의 기회를 잠식한다. 이들이 창조경제에 적극적일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잘될 기업이나 산업을 정부가 골라 선별적으로 진흥하면 될 것인가? 그 뜻은 갸륵하나 정부의 선택이 옳은지가 문제이다. 산업구조가 복잡해지고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정부가 잘될 기업이나 산업을 고르는 것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시장은 모든 소비자가 참여해 기업을 평가하는 무대인데 정부가 전 소비자를 대신해 기업을 평가하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잘해도 실수가 나오며 아차하면 부패가 나오게 된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서울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무역투자진흥회의 합동브리핑에서 투자활성화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대학생이 된 자녀에겐 어느 정도 독립심을 키워 주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 정부도 민간에 대한 진흥기능을 줄여야 한다. 그리고 절약한 예산은 복지지출에 써야 한다. 전국의 공직자들이 보고서에 진흥, 육성, 촉진, 지원을 쓸 때마다 자신이 시장경제에 도전하고 있으며 창조경제의 적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박진 |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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