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재난지원금, 소비와 기부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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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인 칼럼

긴급재난지원금, 소비와 기부 사이

by eKHonomy 2020. 5. 15.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지난 4월 총선 이후 많은 일이 있었다. 정부와 여당은 180명이나 되는 국회의원을 확보하고도, 재벌개혁 조항은 쏙 빼고 피의자의 방어권만을 확립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왜? 이게 21대 국회가 열릴 두 달 후를 기다리지 못할 일인가? 더 나아가 국회가 본회의에서 한 번 부결시켰던 인터넷전문은행법 개정안도 통과시켰다. 공정거래법 위반 중 계열사 누락 신고 부분 정도는 괜찮다며…. 이로써 타 금융업권에는 존재하지 않는 왜곡과 편법의 전통을 또다시 확립했다.


라임 사태가 검찰의 기소를 통해 서서히 베일을 벗고 있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 결과가 속이 시원하게 국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아 사건의 전모는 재판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4월27일 보도자료를 통해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지만 이 방안은 사태의 핵심을 비켜가고 말았다. 불법을 저지른 사모펀드에 대한 사후 시정조치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규제완화를 통해 자산운용업을 발전시키겠다는 허망한 욕심에 대한 반성도 없었다. 소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못하는 금융위원회. 답이 없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역시 백척간두에 걸려 있다. 이 부회장은 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하는 형태로 유체이탈 화법식 사과를 했다. 준법감시위원회는 기다렸다는 듯이 무언가 그럴싸한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애쓰고 있다. 파기환송심 재판장에 대한 기피신청은 고등법원 동료들이 기각하고 현재 대법원에 올라가 있는 상태다. 대법원은 정말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자칫하면 작년 8월의 감동에 찬물을 끼얹고 우리 사법부를 촛불혁명 이전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점을 깊이 새겨야 한다.


이런 많은 일에도 불구하고 이번 주의 화두는 긴급재난지원금 신청이다. 신청 그 자체야 사전에 예고된 것이기에 화두가 될 수 없다. 문제는 정부와 여당이 노골적으로 ‘지원금 수령’ 대신 ‘기부’를 독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발단은 긴급재난지원금의 수혜 대상을 하위 70%로 한정할 것인가, 전체 국민으로 확대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청와대와 기획재정부는 ‘70%’안을, 여당은 ‘전체 국민’안을 지지했고, 결과는 여당의 뜻이 관철되어 전체 국민에게 지급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럼 전체 국민에게 지급하면 된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발상’이 고개를 든 것이다. 그것은 ‘긴급재난지원금을 수령한 후 이를 기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도 있다. 국민들이 이 돈을 소비할 것인지 기부할 것인지 알아서 결정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발적 기부는 어느 틈에 ‘강요되다시피 한 기부’로 탈바꿈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 잘못된 행렬에 앞장섰다. 지난 5월7일 언론에 드러내놓고 기부를 선택한 것이다. 그 뒤를 여당이 이었다. 긴급재난지원금 신청이 시작된 지난 11일 재난지원금 기부서약식을 한 것이다. 이제는 그 뒤를 민간 기업들이 따르고 있다. 12일에는 5대 그룹 임원들이 기부 행렬에 동참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공무원과 금융권 사람들의 눈치 보는 소리가 하늘에 닿고 있다.


이런 행동들은 모두 왜 긴급재난지원금을 국민들에게 지급하는지에 대한 근본을 망각한 것이다. 긴급재난지원금을 정부가 지급해야 한다는 논리는 대개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경기활성화다.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 과정에서 내수 업종이 심각하게 위축되었으니 국민들에게 돈을 주고 소비를 장려해 경기를 활성화하자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일실된 소득에 대한 공적 보전이다. 경기침체는 실업을 급증시켰고 설사 실업에 빠지지 않았더라도 많은 가구들이 소득 감소를 경험했다. 이를 업종별로 세밀하게 구분할 수 없으니 전 국민을 상대로 소득보전을 해주자는 것이다.


둘 중 어떤 논리가 더 근본적인지는 몰라도 두 논리 모두 긴급재난지원금을 받은 국민들이 이를 소비하는 것과 전혀 모순이 없다. 오히려 이를 장려하는 데 가깝다. 그러니까 돈을 저축으로 쌓아두지 못하게 사용 시한을 8월까지로 제한했던 것이 아닌가? 


긴급재난지원금은 그 돈을 쓰라고 주는 것이다. 소비가 미덕인 것이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은 마치 소비는 악덕이고 ‘기부’가 미덕인 것 같은 이상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기부가 그토록 중요하다면 무엇 때문에 국민들에게 돈을 주는가? 그냥 정부가 그 재원을 몽땅 기부하면 되는 것 아닌가?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소비를 할 때보다 정부가 그 돈을 기부를 통해 한곳으로 모으면 더 잘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설사 백보를 양보해서 정부가 주어진 재원을 국민들의 소비결정보다 더 잘 사용할 수 있다면 그것은 별도의 재원을 마련해서 정부가 추진하면 그만이다. 재정적자가 걱정된다고? 그럼 돈을 더 걷으면 된다. 


나는 이미 정부가 한시적 부유세 신설을 통해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국회의원 180명은 그냥 정치적 위세만 떨치라고 국민들이 허락한 것이 아니다. 부자들에게 돈 걷어서 위기 극복하겠다는 것이 뭐가 잘못인가? 본회의가 부결시킨 인터넷전문은행법을 비틀어서 다시 통과시키는 것보다 세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것이 민생입법 아니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일 긴급재난지원금 60만원을 기부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기 월급에서 40만원 더해서 100만원 만들어 서울 시내 전통시장 중 가장 어려운 곳에 가서 열심히 소비했어야 한다. 그러면서 국민들에게 이렇게 외쳤어야 한다. “국민 여러분, 우리 다 같이 힘써서 소비합시다. 그래야 경제가 살아납니다. 8월까지 기다리지 마시고요.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그랬다면 국민들은 본의 아니게 기부 처리된 지급 신청 되돌리기 위해 아까운 시간을 허비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junsij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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