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량권 남용인가 청부감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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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인 칼럼

재량권 남용인가 청부감찰인가

by eKHonomy 2020. 6. 12.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지난 칼럼 이후 역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이용수 할머니의 문제제기로 촉발된 윤미향 의원과 정의연·정대협의 회계부정 문제가 아직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나는 위안부 문제에 문외한이지만 국민의 세금이 들어간 국고보조금 사업의 전말이 국민과 국회에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는 정도의 상식은 있다. 정의연·정대협의 회계부정 의혹은 철저하게 규명되어야 하며, 여성가족부 등 이들 단체에 국민의 세금을 지원한 정부 부처는 터무니없는 억지 부리지 말고 즉시 정부 지원 관련 중요 자료를 국민과 국회에 제공해야 마땅하다.


다음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부당한 승계 및 회계사기 혐의에 대한 재판이 곡예를 넘고 있다. 이 부회장 측이 검찰 기소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검찰수사심의위원회 개최를 신청하자 검찰이 전격적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영장실질심사를 담당했던 원정숙 부장판사는 “이 사건의 중요성에 비춰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및 그 정도는 재판 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나는 원 부장판사의 논리를 이해할 수 없다. 우선 구속 여부는 재판받을 권리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특히 삼성은 웬만한 로펌 뺨칠 정도의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리지 않았나. 적어도 이 부회장에 관한 한, 재판받을 권리의 보호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11일엔 서울중앙지검 검찰시민위원회가 이 부회장 사건을 수사심의위원회에 부치기로 결정했다.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검찰수사심의위가 이 부회장의 기소 여부를 먼저 검토하게 된 것이다.


또한 구속 여부는 재판처럼 유무죄 판결을 내리는 절차가 아니다. 범죄의 내용이 중대한지, 도주의 우려나 증거인멸의 가능성은 없는지가 핵심 고려 사유일 것이다. 그런데 이미 수많은 증거인멸 시도가 드러났고 그 실무자들은 모두 법의 심판을 받고 있다. 알려진 것 이외에 얼마나 더 많은 증거인멸이 진행되고 있는지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다만 이 부회장은 눈앞의 기초 사실관계조차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그것이 증거인멸 시도로 이어질 개연성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재판에서의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한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다.


그다음으로 언론이 크게 취급하지는 않았지만 노무현재단 산하 한국미래발전연구원 기획실장으로 재직하던 윤건영 의원이 2011년 당시 직원 명의의 차명계좌를 만들도록 지시하고 직원을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의 의원실 인턴으로 허위 등록시켜 부당하게 월급을 수령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 차명계좌에는 일부 직원들의 연구비 입금이 있었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이번 문재인 정부의 국정상황실에서 근무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 사건은 액수와 무관하게 정치적 폭발력이 상당하다. 현재 서울남부지검에 사건이 배당된 상태이니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런 사건의 홍수 속에서 오늘 내가 살펴보려고 하는 것은 최근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금융감독원의 국장과 부원장보 각 1인을 중징계하라고 통보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이례적인 수준을 넘어 거의 위법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민정수석실 산하 감찰반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인 금감원장과 금감원 감사만을 감찰할 수 있다. 그게 대통령비서실 직제규정 제7조 제1항이다. 그런데 감찰반은 감찰 대상이 아닌 금감원 국장과 부원장보를 감찰했다. 아무리 좋게 보아도 월권이고 사실상 직권남용이다. 그런데 직제규정 제7조 제5항은 직권남용 하지 말라고 금지하고 있다. 흐음.


더 문제인 것은 감찰반이 금감원장이나 감사는 물론이고 이번에 중징계를 통보한 국장과 부원장보의 개인비리를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점이다. 비리를 확인하지 못했는데 중징계 통보라. 흐음. 민정수석실은 업무처리 지연 등을 중징계의 사유로 들고 있다지만 민정수석실이 공공기관의 업무감사 권한을 가진다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흐음. 그리고 업무처리 지연이 과연 중징계 사유일까? 흐음.


가장 큰 문제는 이번 감찰이 ‘먼지털기식 별건 감찰’의 냄새를 짙게 풍기고 있다는 점이다. 상식적으로 볼 때 감찰반은 아마도 처음에는 금감원장을 겨냥했을 가능성이 크다. 공식 감찰 대상이고 언론에도 그와 유사한 뉘앙스의 기사가 여러 차례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금감원장 비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감찰반은 멈췄어야 했다. 그런데 감찰 대상도 아닌 사람들에 대해 다시 감찰을 재개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부터는 월권, 직권남용, 위법의 그 어딘가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왜 수많은 금감원 임직원 중에서 개인비리도 확인되지 않은 이들 국장과 부원장보가 걸렸을까.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두 사람은 파생결합펀드(DLF) 불완전 판매 사건에서 은행장을 징계하는 것을 담당한 실무자들이다. 오호라. 이제 상당히 많은 의혹들이 그런 대로 아귀가 맞아 들어가기 시작한다. 민정수석실의 감찰이 DLF 관련 징계 직후에 개시된 점, 해당 징계가 금감원장 전결로 처리되었고, 이번에 중징계 통보를 받은 사람들이 그 실무를 담당했다는 점, 그래서 어쩌면 이들이 시쳇말로 “손 좀 봐줘야 할 사람들”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점.


물론 이것은 의혹이다. 그러나 이런 의혹이 맞다면 이번 금감원 감찰은 단순한 ‘재량권 남용’이 아니라 ‘청부감찰’이 된다. 그래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나는 윤석헌 금감원장을 ‘선생님’으로 존경한다. 그만큼 학문적 업적도 높고 원리원칙을 지키려는 의지도 굳건하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주문한다. 이번 중징계 요구는 절대로 수용해서는 안 된다고. 그것은 금감원을 죽이고, 금융감독의 정치적 중립성과 자율성도 죽이고,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존경했던 한 명의 ‘선생님’을 죽이는 일이다. 섣불리 사퇴해서도 안 된다. 해임되는 날까지 살아남아서 금융감독의 중립성과 자율성을 수호해야 한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junsij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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