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난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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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세상/선대인 칼럼

다시, 난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by eKHonomy 2017. 8. 24.

잘 알다시피 최경환 전 부총리 취임 이후 각종 주택대출규제 및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면서 분양시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때를 놓칠세라 건설업체들은 막대한 분양물량을 쏟아냈다. 경기 용인시에 살고 있는 우리 가족에게도 그 여파가 미쳤다. 우리가 살던 광교산 자락 빌라단지와 인근의 작은아이가 다니는 동천초등학교 주변은 대부분 공터나 밭이었다. 그 땅에도 한 대형건설업체가 2년여 전부터 대대적인 분양몰이를 했다. 공사장 소음과 먼지에 시달려도 주민들은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수 없었다. 덤프트럭 옆을 걸어 등교하는 아이를 바라보면 늘 아찔했다. 기존에 멀쩡하던 도로 하나는 아파트 건립 부지에 포함되면서 막혀버렸다. 우회도로가 뚫렸지만, 아파트 공사 차량이나 포클레인 등이 진을 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여러 학부모들과 빌라단지 주민들이 항의했지만, 건설업체는 법을 지켰으니 아무 문제없다고 주장하고 용인시와 교육청 공무원들은 서로 문제를 떠넘겼다. 그러는 사이 아파트 공사는 빠르게 진행돼 동천초등학교는 정문 앞 도로를 제외하고는 3면이 고층 아파트숲에 둘러싸인 섬(?)이 돼버렸다. 이렇게 주변이 삭막하게 변해 버렸지만, 이에 대한 보상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다. 개발업체는 초등학교를 증축하면서 일부 교육기자재를 지원한다고 생색냈지만, 개발업체가 얻는 막대한 개발이익이나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받는 피해에 비하면 쥐꼬리 수준이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다. 3000가구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지만 중학교나 고등학교는 들어서지 않는다. 인근의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학생들을 분산 수용하면 되므로 굳이 신축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관련법에 근거해 위법은 아니라지만, 중고생 자녀를 둔 미래 아파트 입주자들과 그 자녀들의 불편은 매우 클 것이다. 도로도 문제다. 왕복 2차선인 도로를 4차선으로 넓힌다고는 하지만, 3000가구가 들어서면서 늘어날 교통 부하를 감당할 수 있을지 극히 의문이다.

 

역시 용인시에 위치한 지곡초등학교 인근의 개발은 또 다른 난개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방문해본 지곡초 바로 옆 산등성이에서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이곳은 지곡초 학생들이 생태학습장으로 사용하는 학교 앞산을 ㄱ기업이 매입해 콘크리트 혼화제 연구시설 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용인시는 2010년 이 개발 산지가 보전녹지이고, 급경사 지형이라 산림 훼손 우려가 크다며 건축허가를 취소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이후에도 ㄱ사는 두 번이나 사업을 신청했다가 자진 취하했다. 그런데 전임 용인시장 퇴임 몇 달을 앞두고 사업이 갑자기 통과됐다. 사업부지의 경사도는 21.3도로 용인시 개발 조례 기준을 넘어섰으나 통과됐다. 뿐만 아니라 ㄱ사는 폐수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인허가를 받았는데, 실제로는 폐수가 다량 발생하는 기기들이 설계에 반영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확인한 용인시가 이후 다시 건축 허가를 취소했다. 하지만 ㄱ사는 경기도 행정심판위원회에 용인시의 허가 취소를 취하해달라는 청원을 냈다. 수년 동안 이어져온 논란을 단 두 시간 심리한 상태에서 행심위는 ㄱ사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따라 취소됐던 용인시의 건축허가가 되살아났고, 올 들어 ㄱ사는 공사를 시작했다.

 

이 두 가지 사례는 구체적인 양상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법 절차를 지켜서 진행했다고는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주민들의 삶의 질을 크게 훼손하거나 적지 않은 피해를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후자의 사례는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데도 사후적으로 조례 등을 바꿔 합법화해 공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런 식의 난개발이 법적으로 허용된다면 그것은 개발업체들의 편의를 위한 법일 뿐 결코 주민들의 삶의 질을 확보해주는 개발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런 곳이 한두 곳일까. 용인시내에만 이런저런 식으로 난개발이 일어나는 곳이 어림잡아 열 곳이 넘는다고 한다. 용인시가 워낙 땅도 넓고 서울 강남권에서 상대적으로 가까워 아파트를 많이 짓고 개발 수요도 많은 곳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사례는 전국 곳곳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최근 몇 년간의 분양 열기에 기대, 또는 박근혜 정부 시기 과도한 규제 완화 분위기 속에 무분별한 난개발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특히 아파트 분양에 따른 난개발 문제는 이제 속속 입주 시기가 닥치면서 곳곳에서 주민과 개발업체 간, 행정주체 간 분쟁을 초래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 같은 난개발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 지금이라도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각종 법제도를 재검토해 주민들 삶의 질을 충분히 고려하는 개발이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특히 법에 명시된 기반시설 건립 부담을 피하기 위해 편법으로 ‘쪼개기 개발’하는 사례들을 막을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2000년대 초반 뜨거운 문제가 됐던 난개발의 문제가 다시 악몽처럼 떠오를지 모른다.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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