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유세,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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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세상/선대인 칼럼

보유세,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by eKHonomy 2017. 10. 26.

“다주택자 보유세만 때리면 해결될 텐데, 그걸 안 하네.” “보유세! 보유세! 보유세! 인상하란 말이다!!!” “보유세 외엔 답이 없다.”

 

24일 정부가 내놓은 가계부채대책과 관련한 기사에 붙은 추천 많은 댓글 가운데 몇 개다. 최근 정부가 부동산대책이나 가계부채대책을 내놓으면 어김없이 ‘보유세 인상’을 요구하는 여론이 들끓는다. 특히 SNS 등에서 보유세 인상이 투기를 억제하고 집값을 잡기 위한 특효약으로 인정받고 있다. 나도 보유세 강화에는 절대 찬성이다.

 

하지만 보유세 인상안을 조세정책이 아닌 부동산대책의 하나로 내놓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유세는 부동산 보유에 따르는 세 부담을 늘려서 한정적인 자원인 부동산이 그 부동산을 감당할 여력이 되는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돌아가게 한다. 그 부동산을 활용해 보유세를 낼 만큼 충분한 수익을 내거나 그걸 보유할 여력이 되지 않는 사람이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사게 하는 것을 제어할 수 있다. 그래서 부동산 투기에 강한 내성을 갖게 하는 제도이기는 하다.

 

정부가 24일 발표한 가계부채대책을 통해 주택담보대출을 더욱 강화하면서 부동산 시장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번 신(新) DTI와 총체적상환능력비율(DSR) 도입으로 내년 이후 은행에서 빚을 내 부동산을 구입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특히 이미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최고 5%대까지 오른 상태에서 한국은행이 추가 금리 인상을 검토중이고, 내년 4월부터는 양도소득세 중과 등 추가 규제도 시행될 예정이어서 부동산 시장에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사진은 이날 송파구 일대 아파트. 연합뉴스

 

하지만 부동산 보유세를 단기간에 급격히 올릴 수는 없기에 보유세 인상에 따른 투기 억제 효과는 점진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세계에서 가장 보유세 부담이 큰 편인 미국에서도 집값 상승세가 약하지 않은 걸 보면 보유세를 도입했다고 집값을 잡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더구나 노무현 정부 때 종합부동산세를 부동산 투기억제 대책의 하나로 도입하는 과정에서 기득권 세력들의 강한 반발을 샀다. 따라서 보유세 강화 방안은 향후 조세정책을 좀 더 근본적으로 개편할 때 함께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복지수요를 감당할 세수를 확보하기 위해서도, 지방의 재정자립도를 높이기 위한 측면에서도 보유세 강화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보유세를 강화하는 과정에서도 순서가 있다고 본다. 국내 보유세(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의 실효세율은 과표 기준으로도 0.3%가 채 안돼 대다수 선진국들보다 낮다. 1%가 넘어가는 미국보다는 훨씬 더 낮다. 더 문제는 재산세 과표의 기준이 되는 공시주택가격부터 매우 낮게 잡혀 있다.

 

특히 상위 1% 부자들이 가진 부동산일수록 더더욱 그렇다. 올해 4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 삼성동 자택을 매도했을 때 이런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시세 68억원에 팔린 이 집의 공시가격은 29억원으로 공시가격의 시세 반영률이 43%에 불과했다. 정동영 의원이 발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서 가장 비싼 집으로 꼽히는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의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의 공시가격은 201억원으로 시세반영률이 53%에 그쳤다. 반면 대다수 중산층 서민들이 사는 아파트의 공시가격은 시세반영률이 70%를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박 전 대통령이나 이 회장 자택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 재벌가를 비롯한 고가 단독주택의 공시가격이 시세의 약 30~50% 수준에 불과하다. 대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빌딩 등 상업용 건물의 공시가격도 대략 시세의 30~50% 수준만 반영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정부는 이처럼 과소하게 잡힌 공시주택가격의 60%만 과표로 잡아 재산세를 매긴다. 과표 기준 한국의 보유세 실효세율이 0.3%가 안된다고 말했지만, 시세 대비로는 실효세율이 0.1%가 될까 말까 싶다.

 

만약 공시주택가격의 시세 반영률과 과표 반영률을 높이고, 실효세율을 0.5% 수준까지만 높여도 20조~30조원 가까이 세수를 더 거둘 수 있다. 그런 돈을 주거 복지 강화를 위해 얼마든지 쓸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대다수 중산층 및 서민들 가운데 주택을 소유한 사람들의 반발을 크게 줄이면서 보유세를 점진적으로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기술적으로는 종부세처럼 단일한 부과 가격기준을 정하기보다는 세분화된 주택가격 구간별로 점진적 누진구조로 만드는 것이 형평성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 이렇게 하면 소수 고가 주택 소유자들을 중심으로 한 ‘세금 폭탄’이라는 비판도 줄일 수 있다. 지금도 고령 또는 장기 보유자에게 연령 또는 주택 보유기간에 따라 납부세액의 일정 비율을 공제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이 같은 공제 혜택을 더 다듬어 반발을 줄일 필요가 있다. 또 당장 소득이 부족한 가계는 상속이나 매매 시점까지 보유세 납부를 유예해주는 등의 제도적 배려도 생각해볼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 당시 종부세 도입에 따른 진통과 기득권층의 반발 때문에 보유세 강화 방안을 섣불리 내놓기가 조심스러울 것이다. 그렇다고 보유세 강화를 언제까지나 미룰 수도 없다. 그런 점에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민주당 내부에서 지대 독점에 대한 문제 의식과 부동산 보유세 강화에 대한 공감대가 자리 잡는 것은 상당히 다행스럽다. 그 같은 기조 위에서 정부·여당이 대다수 국민들의 공감을 얻으면서 보유세를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세심하게 검토해보기 바란다.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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