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소득주도 성장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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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세상/류동민 칼럼

다시 소득주도 성장을 생각한다

by eKHonomy 2015. 3. 4.

기업가는 노동자들에게 낮은 임금을 지불함으로써 이익을 얻는다. 그야말로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노동자들의 임금이 낮아지면 그만큼 시장의 크기는 줄어들고 결국에는 모든 기업가가 고통을 겪게 된다. 상품을 만들어도 팔 데가 없기 때문이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여성 경제학자 조앤 로빈슨은 이를 “자본주의의 본질적 역설”이라 불렀다. 로빈슨의 선배인 케인스가 강조해 마지않았던 사실이기도 하다. 심지어는 자본주의 체제를 지키는 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을 마르크스조차 이미 그 100여년 전에 자본가는 자신의 노동자는 노동자로 보지만, 다른 모든 자본가들의 노동자는 소비자로 본다는 촌철살인의 지적을 남긴 바 있다.

연말정산 소동을 겪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5000달러를 넘는다는 지금 여기에서 이른바 세금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기준인 연봉 5500만원은 무슨 의미일까?

자녀 둘을 둔 표준적인 도시노동자 4인 가구라면, 더도 덜도 말고 평균만 하더라도 가구당 연간 소득이 10만달러 가까이 되어야 한다. 국민소득 계산에 들어가는 감가상각이니 뭐니 해서 보통 우리가 ‘소득’이라 생각하지 않는 것들을 다 빼고 아무리 보수적으로 잡아도 1년에 1억원을 벌어야 겨우 평균 가구가 되는 셈이다. 그런데 정작 중산층의 기준은 (물론 1인당 소득이기는 하지만) 그 절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어쩌면 이 ‘불편한 진실’이 드러났다는 것에 문제의 한 원인이 있었을 법도 하다.

그야말로 현실의 변화가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인지, 아니면 이런 일에도 주기가 있는 것인지, 소득주도성장에 관한 논의가 정치권에서도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나오고 있다. 원래는 임금주도성장이라 불리던 이 논의는 케인스, 그리고 그와 비슷한 이론을 제시했던 칼레츠키에게서 영감을 찾는 경제학자들이 제법 오래전부터 주장해왔던 것이다.

임금이 기업 입장에서는 생산비용이기도 하지만 노동자의 소득으로서 구매력의 원천이 된다는 당연한 사실로부터 출발하는 이론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의 상황, 즉 임금이 오르지 않아도, 더 정확하게는 노동자가 가져가는 몫이 줄었음에도 기업의 투자는 늘지 않았다는 것과 관련하여 한국에서도 여러 경제학자들이 임금주도성장을 얘기해 왔다.

문제는 원래부터 이론적으로도 임금주도성장이 반드시,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데에 있다. 경제학자들이 즐겨 만드는 경제모형에서 변숫값이 어떻게 주어지는가에 따라 때로는 임금이 주도하는 국면이 되기도, 때로는 이윤이 주도하는 국면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일각에서 주장하듯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는 어차피 국내 시장보다는 수출 시장을 겨냥해서 성장해 왔으며, 그렇다면 임금 상승은 수출경쟁력만 좀먹는다는 얘기도 논리적으로 타당한 측면이 있다. 애초에 경제학 이론 자체가 한국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에서는 임금주도 국면이 되기 어렵다고 가르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얼핏 그럴듯한 경제학 논쟁의 외관을 띤 다툼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착잡하다. 중산층 기준이 수치상 평균의 절반 언저리에서 맴도는 것이 현실이라면,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성장을 추구해야 하는 것일까? 세금 많이 내도 좋으니 연봉 5000만원 한번 받아봤으면 좋겠다는 인터넷 댓글이 유독 마음 한구석에 무겁게 내려앉는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답변하고 있다. _ 연합뉴스


만약 소득주도를 했다가(슬프게도 당분간은 할 것 같지도 않다!) 성장이 안되면 그만두어야 하는가? 마치 여러 정권들이 집권 초기에는 재벌개혁을 외치다가 어느 순간 경제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그만두었듯이. 그렇게 해서 ‘경제를 살리고자’ 분투한 결과가 이런 것이라면? 차라리 최저임금 인상을 추진하면서 오바마가 했다는 말을 흉내 내, “당신은 과연 연봉 5500만원으로 ‘중산층답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라고 물어야 할 때는 아닐까?

성장에 방점이 찍힌 소득주도가 아니라 소득에 방점이 찍힌 성장이 되지 않는 한, 정치권은 표를 받은 다음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떠날 것이고 그렇게 악순환만 되풀이될 것이다.


류동민 | 충남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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