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전 세계적인 확산 우려에 주가가 폭락한 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주식중개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미국에서 손꼽히는 기술기업 ‘텔레다인’을 창업한 헨리 싱글턴(1916~1999)은 별난 천재였다. 눈 감고 두는 체스를 즐기는 뛰어난 수학자였고 요즘도 항공기나 미사일을 목적지까지 유도하는 ‘관성항법장치’를 1950년대에 개발한 엔지니어였다. 그는 1960년 시작한 기업을 30년간 운영하면서 연평균 수익률 20.4%를 거뒀는데, 이는 시장 평균 수익률의 12배에 달한다.
시장의 고정관념과 반대로 움직이는 것을 꺼리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실적이다. ‘자사주 매입’이 그랬다. 1972년 그는 텔레다인이 보유현금은 많고 주식이 저평가돼 있다는 판단이 서자 이후 10여년에 걸쳐 자사주를 90%나 사들였다. 월스트리트의 입방아에 오르기 딱 좋은 결정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자사주 매입은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한 허약한 기업이나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의 결정은 빛을 발했고 다른 기업들도 자사주 매입을 따라하면서 오늘날 일반적인 경영기법으로 자리잡았다.
이 같은 역발상은 그가 치밀한 전략을 세우기보다는 예상하지 못한 외부 충격에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열린 방식을 선호했기에 가능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먼 미래의 항로를 짜는 것보다 날마다 배를 모는 게 좋다”고 말했다.
싱글턴처럼 ‘전설적인 경영자’ 잭 웰치를 뛰어넘는 성과를 낸 최고경영자(CEO) 8명의 사례를 발굴해 분석한 윌리엄 손다이크는 <현금의 재발견>에서 이들의 공통점 중 하나로 낡은 관행에 개의치 않는 태도를 꼽는다. 다른 기업들이 막연한 수익을 기대하고 인수·합병을 하거나 교과서에 따라 보수적으로 움직일 때 이들은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접근했다. ‘당연히 그런 것’이라는 고정관념이나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것’이라는 기존 경영이론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해당 업종에서 일을 해본 적이 없는 ‘백지’의 상태에서 더 참신한 해법을 만들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세계경제가 실물·금융 복합불황이라는 전례 없는 위기에 처한 오늘날 재정당국에 필요한 접근법이 아닐까 싶다. 경제 석학들이 미 정부에 “국민들에게 현금을 지급하라”고 최근 잇따라 촉구하고 나선 것은 의미심장하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제이슨 퍼먼 전 백악관 경제자문회의 의장에 이어 최근엔 경제학 교과서를 쓴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가 사회보험 차원에서 정부가 모든 미국인들에게 현금 1000달러(약 120만원)씩 지급할 것을 주장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지금은 정부가 재정적자를 걱정할 때가 아니다”.
전례 없던 2008년 금융위기의 해법도 역시 기존 관행이나 이론에 맞는 모범답안과는 거리가 멀었던 바 있다. 전 세계 금융시스템이 와해될 위기에 처하자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달러를 거의 무제한으로 찍어 풀었는데 이는 기존 거시경제학과 전혀 맞지 않았다. “달러화 가치가 폭락해 휴지조각이 될 것”이라는 전통파 일각의 예상도 빗나갔다.
정책 이름이 뭐가 됐든 간에 지금은 실물경제가 와해되고 수많은 시민들이 경제난에 빠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올해 경제회복이 4분기에도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지 않도록 결단이 필요하다.
<최민영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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