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관치금융의 막장 보여준 KB 경영진 징계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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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사설]관치금융의 막장 보여준 KB 경영진 징계 결말

by eKHonomy 2014. 8. 22.

금융감독원이 임영록 KB금융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에게 ‘주의적 경고’라는 경징계 조치를 내렸다. 6월 초 기세등등하게 ‘문책경고’라는 중징계를 통보했던 것에 비하면 용두사미지만, 권력의 눈치를 보며 결론을 질질 끌어왔던 점을 떠올리면 예견된 결과이기도 하다. 지난 2개월간 금융권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KB 경영진에 대한 제재가 금융권력 간의 흥정과 야합으로 매듭지어진 현실이 참담할 뿐이다.

이번 징계 결과는 한국 금융권력의 후진적 행태를 유감없이 보여준 사례다. 사태의 본질은 신용카드사 정보유출, 도쿄지점 대출사고, 그리고 국민은행 전산시스템 교체과정에서의 외압 등 그동안 KB에서 발생한 사건·사고에 대한 진실규명과 이에 따른 책임 추궁, 그리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느 틈엔가 문책을 피하기 위한 꼴사나운 로비 싸움으로 변질됐다. 경영진들은 소명을 앞세워 정부 요로와 정치권을 헤집고 다녔다. 이 과정에서 감사원이 금융지주회사법상 KB카드에 국민은행 고객정보를 넘긴 것은 문제가 없다며 임 회장에게 고객 정보유출건에 대한 징계 면죄부를 줬다. 임 회장은 부담을 덜었고, 결국 전산기 교체 외압부문만 인정돼 경징계를 받아냈다. 이 행장 역시 도쿄지점 부실 대출에 대해서만 경징계를 받았다. 특정 경영진에 대한 중징계가 사실상 어렵게 되자 결국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으로 결론을 내린 셈이다.

국민은행 전산시스템 교체 관련 사태 일지 (출처 : 경향DB)


국민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권력자 앞에만 가면 힘을 빼는 기막힌 현실에 말문이 막힌다. 이런 상황에서 제재의 투명성이니 공정성이니 외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조롱이다. 권력의 눈치를 보다 꼬리 내린 금융당국의 모습은 딱하다 못해 연민이 느껴질 지경이다. 외풍에 흔들려 감독기관에 주어진 조사권과 징계권을 무용지물로 만들면서 존립 근거마저 의심스럽게 한다. 임 회장과 이 행장 역시 경징계로 퇴진 압박에서 벗어나 자리를 보전하게 됐다고 여기겠지만 권력에 의탁해 면죄부를 받아낸 상황에서 신뢰와 리더십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더구나 두 사람 간 갈등은 여전한 상황이다.

우리는 이번 결말이 KB에 대한 권력의 지배만 더욱 공고히 하는 나쁜 선례가 됐다고 믿는다. 금융이 권력에 따라 좌우될 때 해당 금융사 구성원은 물론 금융소비자에게 어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지는 불 보듯 뻔하다. 독립적인 금융시스템 개선을 위한 진지한 논의가 시급하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금융사를 정권의 전리품으로 여기며 경영진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내는 풍토를 근절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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