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은행들이 수수료 인상을 위한 원가분석 작업에 착수했다고 한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최근 “금융기관의 수익성 악화를 막기 위해 수수료를 현실화하겠다”고 하자 기다렸다는 듯 인상 논의에 들어간 것이다. 은행 송금이나 현금자동지급기(ATM)를 이용할 때 내는 고객의 수수료 부담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금융기관들은 이자 놀이로 매년 수조원의 이익을 내고 있다. 직원들의 평균 연봉이 억대를 넘는 은행도 부지기수다. 경영 잘못으로 이익이 줄자 이를 국민 주머니를 털어 해결하겠다는 발상 아닌가. 금융기관의 부실을 관리감독해야 할 감독당국 수장이 앞장서 수수료를 올리겠다고 나선 꼴은 또 뭔가. 은행과 금융당국의 몰염치가 가관이다.
수수료 인상 배경은 실적 악화다. 최 원장은 지난 16일 “금융기관 자산이 1800조원인데 순익이 10조원은 넘어야 한다”면서 “지난해 8조7000억원밖에 올리지 못해 걱정이 많다”면서 수수료 현실화 방안을 꺼냈다. 올해 실적은 더 나빠져 지난해의 반토막 수준이다. 금융권의 수수료 수입은 연간 5800억원 수준이다. 이를 현실화하면 손쉽게 수천억원의 공돈이 생긴다. 국내 금융기관들은 월가의 탐욕이 국제적인 이슈로 부상하자 이를 차단하기 위해 2011년 마지못해 수수료를 내렸다. 2년 만에 원가 타령을 앞세워 원상 회복에 나선 꼴이다.
하지만 은행의 수익 악화가 수수료 탓인가. 은행 수익은 예대마진(예금 금리와 대출 금리의 차이)에 따른 금리 수입이 전체의 90%에 육박한다. 50% 안팎인 외국 금융기관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최근 국제적인 저금리 기조 탓에 이 같은 후진적인 천수답식 수익구조가 실적 악화의 주 원인이다. 각종 금융사고와 기업 대출 잘못으로 은행 부실이 쌓인 탓도 있다. 수수료 인상은 은행이 장사를 잘못해서 생긴 일을 고객들에게 덤터기 씌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같은 잘못을 바로잡아야 할 금감원장이 수수료 인상에 앞장선 것은 더 이해할 수 없다.
금융권이 수수료 인상을 논할 자격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금융권의 고액 연봉 잔치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금융지주사 회장 연봉이 30억원을 넘는 곳도 있다. 수익구조가 걱정이라면 최소한 비합리적인 임금구조부터 바로잡는 게 순리일 터다. 또 인상 논의에 앞서 수수료 성격부터 따져봐야 한다. 백화점이 고객 유치를 위해 셔틀버스를 운행하거나 상품을 배송할 때 돈 받는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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