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지배구조 개선 없인 해외자본 먹잇감 못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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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사설]지배구조 개선 없인 해외자본 먹잇감 못 벗어난다

by eKHonomy 2015. 6. 10.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둘러싸고 삼성과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 간의 신경전이 점입가경이다. 엘리엇이 합병 비율을 문제 삼아 주총 결의 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양측이 모두 우호지분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주식은 널뛰기를 거듭하고 있다. 근간에 한국 재벌의 후진적 지배구조가 맞물려 있음을 감안하면 가벼이 넘길 사안이 아니다.

이 대립은 지난달 양사의 합병 발표에 엘리엇이 반대의견을 공식화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260억달러(약 30조원)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는 펀드다. 합병 반대 이유는 1 대 0.35로 되어있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이다. 엘리엇은 삼성물산 지분 7.12%를 갖고 있다.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매출과 자산이 압도적으로 큰데도 현 주가만을 반영해 합병 비율을 산정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반면 삼성은 1개월 평균·1주일 평균·최근일 종가 등 3개의 평균값으로 결정되는 법 규정대로 합병 비율을 산정한 만큼 문제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최근 제일모직의 주가가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으면서 높게 형성돼 있는 반면 삼성물산 주가는 저평가돼 있는 점을 감안하면 삼성 측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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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 입장을 밝혀온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9일 이번 합병을 막기 위한 법적 절차에 착수했다. 이날 서울 서초구 삼성물산 서초사옥 현관에 직원들이 서 있다. _ 연합뉴스


물론 엘리엇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2003년 SK 경영권을 위협했던 소버린처럼 지분 매입 뒤 경영권 분쟁을 일으켜 주식을 파는 이른바 ‘먹튀’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합병이 삼성의 경영권 승계작업과 연관돼 있는 것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제일모직 지분 23.24%를 갖고 있지만 삼성전자 지배력(지분 0.5%)은 미미하다. 반면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 이상을 갖고 있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합병하면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은 높아진다. 삼성전자 지분 1%를 확보하는 데 2조원 이상 필요한 상황에서 합병은 ‘신의 한 수’이기도 하다. 이를 감안하면 이번 엘리엇의 문제 제기는 삼성이 자초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재벌들의 지배구조가 불투명하다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현대자동차의 서울 삼성동 부지 고가 매입에 대한 주주 반발, 삼성중공업·엔지니어링 합병 실패 등은 이런 불투명성이 안겨준 사례들이다. 투기자본의 공습을 탓하기에 앞서 세습을 위해 출자구조를 임의로 바꾸고 부당하게 일감을 몰아주는 따위의 경영개선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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