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윤경 | 에듀머니 이사
최근 일부 야당에서 무상의료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무상급식에 이어 보편적 복지의 일환으로 국민들의 의료보장 서비스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보편적 복지도 좋지만 재원 확보를 위해 사회보험료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한다. 그러나 무상의료를 통한 보편적 복지를 하면 개별 가정에서 부담하는 비용이 증가한다는 우려는 어느 일면만 본 협소한 시각이다.
경향신문 DB
우리나라는 공보험 체계를 갖고 있으면서도 민영 의료보험 가입률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08년 한국 의료패널 기초분석보고서’에 따르면 표본가구 7866가구(2만4616명) 중 76.1%가 1개 이상의 민영 의료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구당 월 평균 보험료는 종신보험과 연금보험을 제외하고도 20만원이 넘는다. 상담 중에 만난 상당수의 중산층 가정은 종신보험까지 전부 합해서 사보험료로만 50만원이 넘는 돈을 지출하고 있다. 과거에는 보험에 가입하더라도 저축을 우선으로 한 후 최소의 범위 내에서 보수적으로 선택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저축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보험료로만 큰 액수를 지출하는 가정이 적지 않다. 그만큼 사람들의 불안이 증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의료보장을 민영부문에 의존하는 미국에서는 보수 경제학자들에 의해 의료비용 지출이 공공부문보다 민영부문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통설이 굳어져 왔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의 자료를 통해 공공부문 의존도가 높은 영국과 민영 의료보험 의존도가 높은 미국의 의료체계를 비교하면 민영부문의 효율성이 더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의 1인당 의료비 지출은 6102달러로 영국의 2508달러에 비해 거의 3배 수준이다(2004년 기준. 세계보건기구 자료).
폴 크루그먼은 <미래를 말하다>라는 책에서 미국의 의료제도에 대해 진료 자체보다 진료 거부에 더 많은 돈을 들이기 때문에 의료 서비스 제도가 대단히 비효율적이라고 비판한다. 우리나라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민영 의료보험료 부담은 높지만 정작 의료보험 가입이 꼭 필요한 사람은 가입이 제한되거나 막상 질병이나 사고 등으로 보험금을 청구했을 때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결국 높은 비용구조 속에서 의료 서비스의 질은 낮다는 이야기다.
무상의료 정책으로 개별 가정의 사회보험료 부담이 늘어날 수는 있지만 알고보면 민영 의료보험료 부담을 없애면서 전체적으로 비용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 또한 보험 이용이 절실한 사람의 가입 제한과 같은 불합리성도 제거할 수 있다.
지난해 말부터 민주노동당은 ‘건강보험 하나로 무상의료 실현, 연간 병원비 100만원 이하’를 위한 입법청원 서명운동에 나섰다. 가계부채로 하루가 다르게 현금 흐름이 악화하고 우리 경제 전체를 위협하는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클 정도로 가계 재정상태가 최악이다. 이러한 때에 민영 의료보험료로만 연간 200만원을 넘게 지출하느라 저축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이다. 사회보험료를 일부 더 지출하더라도 의료서비스가 보편적 복지로 확대돼야 할 필요성이 절실한 현실이다. 결국 보편적 복지야말로 중산층 서민들이 적극 활용해야 할 재테크가 아닐까 싶다. 돈 되는 부동산 정보, 주식과 펀드 공부에 들였던 관심만큼 복지 분야에 에너지를 쏟는 것이 재테크 실효성이 더 높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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