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창]불어터진 국수와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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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시대의 창]불어터진 국수와 한국경제

by eKHonomy 2015. 3. 3.

며칠 전의 ‘국수 파동’을 아시는지.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활성화 법안 처리가 늦어진 것을 ‘퉁퉁 불어터진 국수’에 비유하자, 야권이 반발하고 일부 여당 의원도 대통령의 말에 이의를 다는 소동이 벌어졌다. 불어터진 국수란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요구했던 부동산 3법을 야당이 동의를 안 해주다 지난해 말에야 겨우 여야 합의로 통과된 것을 말한다.

부동산 3법은 정부가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3가지 규제 완화 법이다. 분양가 상한제를 공공택지에만 적용하고 민간택지에는 폐지하는 법, 재건축 사업에 따른 초과이익 환수를 3년간 유예해 주는 법, 수도권의 재건축 조합원에게 주택 1채만 분양하던 것을 3채까지 분양받게 하는 법 등 세 가지를 말한다.

과연 이 법들은 경제를 살릴 수 있을까. 분양가 상한제는 한국의 부동산 투기의 역사에서 볼 때 상당한 정당성을 갖고 있다. 과거 분양가 상한제를 폐지했을 때 엄청난 가격 폭등이 있었기 때문에 분양가 상한제는 우리가 지켜야 할 규제이다.

초과이익 환수도 원칙적으로 옳다. 토지로부터 발생한 초과이익은 다른 어떤 소득보다 불로소득의 성격이 강하므로 최우선으로 과세되어야 한다.

정부는 여전히 팔짱을 끼고 있지만 우리 사회 일각에서 복지를 위한 증세 우선순위를 논하고 있는데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이 후보에 오르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세금보다 우선순위가 높은 세금이 있다면 그것은 토지에서 발생하는 초과이익을 환수하는 세금일 것이다.

주택을 3채씩 분양받도록 해서 집이 팔리게 하겠다는 것도 미봉책에 불과함을 삼척동자라도 알 것이다. 이들 3개 법의 공통점은 지극히 단기적 시각, 그리고 오랫동안 한국의 고질병이었던 부동산 투기의 해악에 대한 인식 부족이다. 백보 양보해 경기부양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효과는 일시적인 데 그치고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킬 것이다.

문제는 이런 법들을 경제활성화 수단으로 보는 대통령의 인식이다. 대통령이 경제 전문가가 아닌 이상 경제를 잘 모르는 것을 반드시 나무랄 수는 없다. 문제는 경제에 대해 당장 눈앞의 성과를 요구하는 조급성이다.

역대 대통령은 경제를 잘 모르면서 경제성장률, 경기지표 같은 데는 아주 민감해 조금이라도 지표가 나쁘면 장관들을 채근했다. 그러면 경제 관료들은 당장 가시적 성과를 보여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금방 밥상을 차려 대통령 앞에 대령하곤 했는데, 주로 위의 부동산 3법 같은 미봉책들이었다.

이런 처방이 당장 경기를 살리는 효과는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 건설업의 비중이 토건국가 일본을 제외한 어느 나라보다 크기 때문에 부동산 시장에 불을 지피면 그 효과는 금방 나타나고 불길도 세다.

그래서 역대 장관이 애용하던 수단이 바로 부동산 시장 활성화 대책이었다. 말이 활성화이지 실은 정책이라 이름 붙이기도 부끄러운 투기 조장에 불과하다. 제대로 인식이 있는 대통령 같으면 이런 대책을 내놓는 장관을 질책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런 수단은 당장 눈앞의 성과만 올릴 뿐 멀리 보면 오히려 해악이 더 크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이 오랜 체험을 통해 잘 알다시피 부동산 시장에서는 자칫하면 엄청난 불로소득이 발생하고, 부동산 투기가 판을 치면 성실히 일하는 사람이 허탈해하고, 장기적으로는 경제의 근본 체질이 약화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수시로 규제를 ‘암 덩어리’에 비유하는 걸로 봐서 과도한 규제가 한국 경제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 그런 인식의 연장선에서 이번에 불어터진 국수에 비유된 부동산 규제 완화도 환영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세계은행이 매년 발표하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Doing Business) 순위에서 한국이 세계 200개국 중 5위라는 사실은 어떻게 해석하는지.

한 부동산 중개업소 앞에서 한 남성이 가격을 살펴보고 있다. _ 연합뉴스


지금 우리 경제의 활성화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지나친 규제가 아니다. 부동산 규제는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노동자, 특히 비정규직, 서민, 자영업자, 중소기업에 지출할 소득이 없는 데 있다. 부자, 대기업에는 돈이 넘치지만 투자나 지출의 유인이 없다. 그래서 돈이 돌지 않는 게 문제다. 아랫목은 뜨거워서 델 지경인데, 윗목은 싸늘하기가 얼음장 같다. 얼음장을 녹이는 포용적 성장 정책이 경제를 살리는 해법이다.

비유를 즐기는 박 대통령에게 권한다. ‘암 덩어리’나 ‘불어터진 국수’ 대신, ‘얼음장 녹이기’를. 그렇다. 해빙, 이것이 진정 경제를 살리는 길이다.


이정우 |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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