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TPP 참여, 비싼 입장료 내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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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시론] TPP 참여, 비싼 입장료 내지 않으려면

by eKHonomy 2015. 10. 12.
 미국, 일본 등 12개국이 참여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이 지난 5일 타결됐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최경환 부총리는 국회에서 “우리나라도 TPP에 참여하는 방향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2008년 미국이 TPP 참여를 선언할 때는 우리나라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타결한 데다, 중국과 FTA 협상이 진행되던 상황이어서 여기에 집중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당시 이명박 정부가 했다”고 전 정부에 책임을 돌렸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TPP의 기본적인 구조를 보면 미국과 일본의 FTA 측면이 강하다. 한국이 협상에 참여하기에는 기회가 매우 어려웠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우리나라가 TPP 협상에 참여하지 못한 ‘불편한 진실’은 이렇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2년까지는 TPP 협상에 참여한 11개 국가들의 경제규모가 미국을 제외하고는 크지 않았고 우리나라는 미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TPP 참여 국가들과 이미 양자 간 FTA를 체결한 상태였다. 그리고 한·미 FTA 국회 비준(2011년 11월22일)으로 큰 홍역을 치른 상태였기 때문에 정권 말기에 미국이 포함되는 또 다른 메가톤급 통상협상에 참여하지 못했을 것으로 충분히 이해된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2013년 3월 일본이 TPP 협상 참여를 공식 선언하면서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일본이 참여함으로써 TPP는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아·태지역의 메가 FTA로 자리매김하고 새로운 통상규범을 선도해 나갈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게다가 여러 모로 경쟁관계인 일본이 참가하는 TPP가 출범하면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 약화가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중요한 시기에 현 정부는 통상정책의 주관부서를 외교통상부에서 산업통상자원부로 이전하고 통상대표를 장관급에서 차관보로 격하시켜 버렸다. 결국 통상전문가의 상당수가 빠져버리고 담당부서 규모도 축소되면서 새로운 통상환경에 적극 대응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미국은 우리나라의 TPP 참여에 우호적인 입장이었고, 이제 막 참여를 선언한 일본은 우리나라의 TPP 참여에 딴지를 걸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내부적인 준비 부족으로 11월에 가서야 TPP 협상 참가에 관심을 공식 표명했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협상이 많이 진척된 상태이고 조기 협상 타결을 목표로 하고 있어서 미국을 위시한 협상 참가국들은 협상 지연을 불러올 한국의 참여를 환영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마이클 프로먼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의 타결을 알리고 있다._연합뉴스


TPP 협상이 타결되고 나서야 뒤늦게 정부는 TPP 참여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의 입장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통상규범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뿐만 아니라 후발 참여국으로 값비싼 입장료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TPP에 참여하지 않으면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40%에 달하는 TPP 시장의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소외되고 일본을 비롯해 말레이시아, 베트남, 멕시코 등과의 경쟁에서 불리한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우리나라 통상의 무게가 미국에서 중국으로 기울어지게 됨으로써 중국 경제에 지나치게 의존적이 되는 것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양 서두를 일만도 아니다. 향후 TPP는 참가국들의 국내 비준과정을 거쳐야 하고 빨라야 2017년 중반에 가야 정식 발효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때까지 우리나라는 정식으로 추가 가입 협상을 할 수 없다. 기왕에 이렇게 됐으니 국내의 여론수렴 과정을 거쳐 TPP 가입 시기와 전략을 치밀하게 마련해야 한다. 한편으론 TPP 회원국들과 개별적인 협상을 통해 사전 정지작업을 철저히 해야 한다. 그동안 우물쭈물하다가 실기했는데 이번엔 우왕좌왕하다 지나치게 비싼 입장료를 내는 상황만은 피해야 할 것이다.


이현훈 | 강원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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