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공정성 잃은 공정위, 반성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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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아침을 열며]공정성 잃은 공정위, 반성이 먼저다

by eKHonomy 2017. 2. 27.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하에서 공정거래위원회는 가장 많은 논쟁을 야기한 부처였다. 공정위 입장에서 보면 수모도 적잖이 겪었다. 분명한 점은 공정위가 공정위답지 못했고 많은 신뢰를 잃었다는 사실이다. 보수정권의 친재벌적 성향에 대통령 눈치만 봤던 공정위의 직무태만이 겹친 게 원인이다.

 

공정위가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을 개선해야 할 본연의 임무에 소홀했다는 주장은 괜한 트집이 아니다. “공정위조차 재벌 기만 살리면 경제가 좋아질 것이란 낙수효과에 집착한 나머지 한국 경제의 양극화는 이제 최고의 위험수위에 이르렀다”고 한탄한 공정위 고위 간부 출신 인사의 고해성사 앞에 공정위는 무어라 항변할 것인가. 재벌의 납품단가 인하 요구에 중소기업은 인건비를 줄일 수밖에 없고 이는 자영업자 양산과 사회안전망을 위한 국가재정 부담 증가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더욱 굳어지고 있다.

 

시장경제의 파수꾼을 자처하는 공정위는 경기 규칙을 정하고 반칙 행위를 제재하는 규제기관의 성격상 재벌과 긴장 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걸고 집권한 이명박 정부의 출범은 공정위로선 최대의 위기였다. 대통령직인수위 활동 시절 이명박 정부가 공정위 폐지를 검토 중이란 얘기도 나올 정도였으며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막기 위한 장치였던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는 2009년 폐지됐다. 공정위가 물가감시기구로의 탈바꿈을 선언한 기막힌 일이 벌어진 것도 MB 정부에서였다.

 

박 대통령이 2012년 대선에서 경제민주화를 부르짖었고 공정위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 등을 통해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 근절에 책임감을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재벌개혁의 선봉장 역할을 하기엔 뒷심이 딸렸다. 여러 말이 필요 없다. 공정위가 삼성의 순환출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와대의 지시를 받고 특혜를 제공했다는 의혹에 휘말려 박영수 특검팀으로부터 압수수색을 당하고 공정위원장이 특검에 소환됐다는 사실 자체가 공정위의 일탈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공정위 역사에 가장 치욕스러운 일로 기록될 것이다.

 

공정위 관리들은 경제검찰이란 언론 보도를 접하면 손사래를 친다. 강제조사권도 없고 기업 현장조사에서조차 저항과 반발에 부딪히는 공정위가 무슨 검찰이냐는 하소연이다. 그러나 공정위는 담합 등 기업들의 불공정 행위를 조사하고 심결까지 내리는 준사법기관이다. 공정거래법과 관계된 사건은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의 기소가 가능하도록 한 전속고발권이라는 제도도 공정위가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주자가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 방안을 들고나온 것은 공정위가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 그만큼 공정위가 권한만 독점하고, 대기업 관련 법 위반 행위 등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는 방증에 다름 아닌 것이다. 중소기업은 재벌 횡포에 민원을 제기해도 공정위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런 자구 수단을 강구할 수 없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국민경제의 균형성장, 정의의 관점에서 볼 때 재벌 중심의 경제체제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차기 대선에서 누가 집권하든 재벌개혁은 외면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 해소는 결코 자연발생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정책적 대응의 결과라는 점도 분명하다. 경제민주화의 핵심이 경제력 집중의 해소와 방지라고 볼 때 공정위의 역할은 실로 막중한 것이다.

 

그러나 보수정권하에서의 직무유기를 반성하고 환골탈태하지 않는 한 공정위에 재벌개혁을 기대하는 것은 ‘미션 임파서블’이다. ‘미워도 다시 한번’을 외치기에 앞서 공정위는 보수정권 집권 기간 중 과오를 되돌아보고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재벌개혁론자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공정위의 정책 수단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집행이 문제였다”고 진단했다. 공정위 상임위원 출신의 지철호 중소기업중앙회 감사는 “대기업 내부거래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해 보이나 제도 자체는 크게 미흡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공정위가 보수정권에서처럼 대통령만 쳐다보며 일해선 안된다. 그럴려면 실질적인 합의제로 운영될 수 있도록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정위 상임위원을 위원장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할 게 아니라 합의제 기구의 취지에 맞게 국회나 각계의 추천을 받는 방식으로 바꾸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공정위는 재벌개혁의 주무 부처일 수밖에 없다. 공정위의 진정한 과오 반성이야말로 재벌개혁을 향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오관철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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