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경제정책이 성공하려면 당국자들의 메시지 전달과 관리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경제주체들이 정부의 정확한 의도를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해줘야 효율적 집행이 가능해진다.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면 치밀한 설득 전략이 필요하며 당국자들에게는 ‘교섭자’로서의 역할과 기능이 요구된다.
특히 한국에서는 청와대와 정부 간, 정부부처 간 정책조정이 정교해야 하고 내부 협의를 통해 조율이 끝나면 ‘원 팀 원 보이스’(하나의 팀 하나의 목소리)가 필수적이다. 정부가 혼선을 안겨주면 경제주체들은 정부를 불신하게 되고, 의사결정을 주저하게 된다. 이런 점에 비춰봤을 때 지난 1년간 문재인 정부 경제팀에 후한 점수를 주긴 힘들다.
J노믹스(문재인 정부 경제정책)는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3대 정책기조를 뼈대로 하고 있다. 이 세 가지가 톱니바퀴 맞물리듯 돌아가야 하지만 그러질 못했다.
혁신성장에 정부는 전략 부재를 노출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창조경제와 뭐가 다른 것인지,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해 어떤 구상을 갖고 있는지 경제주체들이 궁금해했다. 혁신성장에 무관심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음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첫번째 혁신성장 관계장관회의가 열린 게 지난 8일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1년이 지나서야 관계장관들이 혁신성장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는 얘기가 된다. 그것도 문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우리 정부 1년이 지나도록 혁신성장에선 아직 뚜렷한 성과와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며 분발을 촉구한 것이 직접적 계기가 됐을 가능성이 높다.
혁신성장은 상식적으로 보면 공급의 질을 높여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일자리 증가로 이어지도록 하겠다는 전략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정부는 기득권 계층의 지대추구 행위와 경쟁자의 시장진입을 막는 행태를 깨뜨리기 위해 구체적 개혁조치를 내놓았어야 한다. 낙수효과나 부동산 부양에 기댄 성장정책이 아니라 중소·벤처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혁신적 대책이 필요했다. 다른 분야에 비해 혁신성장에 대한 준비가 취약했다는 지적은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소득주도성장이 J노믹스의 전부인 것처럼, 최저임금 인상이 소득주도성장의 전부인 것처럼 오인되는 현실도 정부 책임이 가볍지 않다. 소득주도성장은 최저임금 인상과 저소득층에 대한 국가의 재정 지원을 통해 가계의 주머니를 채워주자는 것이다. 소득분배 악화는 한국 경제의 가장 큰 구조적 현안이며 이를 교정하지 못할 경우 사회적 안정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소득주도성장은 당위성을 인정받는다.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은 지난 대선 때 주요 후보들의 공통된 공약이었음에도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세력은 폐해만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을 갉아먹을 때 이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기득권 세력이 최저임금 인상 폐해를 소득주도성장 폐기론으로까지 끌어올리는 동안 정부가 사실상 속수무책이었다는 점은 아쉽다. 무엇을 하겠다는 것만큼 중요한 게 구체적인 방법 제시다. 완벽한 정책은 없는 만큼 최저임금 인상도 자영업자 등의 부담을 줄여 최저임금을 올릴 여지를 넓히는 정교한 방안을 마련했어야 옳다.
소득주도성장을 둘러싼 비난에는 이념적 정쟁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만약 경제팀이 상호 간에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최저임금 인상 외에 가계소득을 높이기 위한 실질적 대안을 제시했으면 돌파가 가능했을지 모른다.
툭하면 불거지는 김동연 부총리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간 불협화음도 우려스럽다. 당사자들은 부인하지만 경제 컨트롤타워가 누구인지, 누구 말을 더 신뢰해야 하는지 경제주체들에 혼선을 준 것만으로도 심각하다. 현 정부를 비판하는 쪽에서 교수 출신의 청와대 참모진을 끌어내리기 위해 김 부총리를 두둔하는 듯한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의 무기력과 한반도 해빙 분위기에 힘입어 여당이 압승을 거뒀지만 경제와 민생만 놓고 보면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J노믹스 2.0을 위해 경제팀이 전열을 가다듬고 분발해야 한다. 정책의 내용 못지않게 정책 추진 방식의 점검이 필요하다.
평범한 의사는 병이 생긴 후 치료하고, 명의는 병이 나기 전에 치료한다고 한다. 최적의 인물들이 경제팀을 이끌고 있는지, 구성원들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선제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경제가 정권의 명운을 가를 수 있다.
<오관철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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