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마이너스 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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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여적]마이너스 유가

by eKHonomy 2020. 4. 22.

저유가 일러스트레이션. 로이터 연합뉴스


정말 비현실적인 일이 벌어졌다.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상업거래소에서 마감된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배럴당 마이너스 37.63달러를 기록했다. 원유를 팔면서 돈을 받기는커녕 웃돈을 더 얹어준 것이다. WTI는 두바이유·브렌트유 등에 비해 불순물이 적어 최고 품질을 자랑한다. 금융위기 때는 배럴당 130달러 이상, 지난 1월에도 60달러 안팎에 거래됐다. 3개월 만에 100달러 가까이 하락, 1983년 거래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추락했다.


WTI는 주로 선물거래로 처리된다. 미래 일정시점에 인수·인도키로 하고 가격을 정한다. 마이너스 거래는 5월물 만기일을 하루 앞두고 발생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 수요가 하루 3000만배럴 급감, 재고가 쌓이면서 거래가격보다 저장비용이 더 많이 들게 되면서 빚어졌다. 6월물 WTI나 브렌트유는 정상 거래됐지만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전 세계 원유 저장능력은 한계에 다다르고 산유국들이 합의한 감산물량은 하루 2000만배럴이다. 코로나19로 수요가 늘지도 장담할 수 없다.


유가 하락이 세계경제에 드리운 먹구름은 심각하다. 유가가 배럴당 10달러에 이를 경우 미국 내 석유 탐사 및 생산기업 대부분이 도산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이미 거대 석유장치기업 핼리버튼은 1분기에만 10억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원유를 기초로 한 파생금융상품 거의 전부가 손실이 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왔다. 석유산업의 생존 마지노선은 30달러라고 한다. 그 이하의 가격이 장기간 이어지면 전 세계 석유산업 전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의미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마이너스 유가가 나타나면서 다시 셰일(암석)가스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2014년 ‘셰일혁명’ 이후 미국·러시아 등이 석유 강대국으로 등장하면서 중동의 석유 패권 신화도 저물어갔다. 산유국간 경쟁이 심해졌고 유가는 안정됐다. 셰일오일은 지하 3000m 암석층에 존재하기 때문에 경제성이 없었으나 기술이 발달하면서 채굴이 본격화됐다. 문제는 그로 인해 지구 내부의 단단한 암석층이 파괴되고 있다는 점이다. 원유가격 하락이 세계경제 침체를 반영한 결과라 걱정스럽지만 지구는 잠시 쉴 기회를 잡은 셈이다.


<김종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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