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소위 ‘원샷법’)을 이번 회기 중에 처리하기로 합의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 법은 공급과잉에 처한 ‘정상적 기업’의 사업재편을 지원하겠다는 취지로 발의된 법이다. 그러나 여러 문제를 가지고 있는 법이기도 하다. 이하에서는 그 문제를 살펴보기로 한다.
이 법은 정부가 추진하는 법이다. 실제로 이 법의 성안 과정에는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깊숙이 개입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 법은 정부 입법으로 발의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제정법임에도 불구하고 정부 차원의 공청회도 없었고, 입법예고 기간 중 국민의 여론을 청취하고 이견을 조정하는 과정도 생략됐다. 이 법안은 정부가 실질적으로 다 만들어 놓고도 의원입법 형태로 발의됐다. 그런데도 여권이 집중적으로 ‘미는’ 법안 목록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대부분 이런 경우에는 ‘강한 이해관계를 가진 자’가 존재하고, 그 ‘이해관계’는 가능한 한 숨기고 싶은 내용을 담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 혈안이 돼 추진하던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을 떠올리면 된다. 금융지주회사에 비금융 자회사 보유를 허용해주던 법 말이다. 그때 많은 사람들은 삼성전자를 지배하고 있는 삼성생명을 떠올렸다.
지금 원샷법은 어떤가? 이 법에는 정부가 재벌에 규제도 완화해주고 지원도 해줄 수 있는 조항이 들어 있다. 삼성을 포함해 재벌 3세의 승계가 한창인 상황에서 공교롭게도 5년 한시법으로 만들어졌다. 여기서 삼성 등 재벌을 떠올리는 것은 필자의 과민반응일까?
그럼 법안의 내용은 무엇인가? 핵심은 상법의 규율을 완화해달라는 것이다. 주주총회 안 열도록 해주고, 꼭 주주총회를 열어야 한다면 그 공고기간을 줄여서 후딱 해치울 수 있게 해주고, 채권자 보호절차를 ‘간소화’하고, 반대 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조차 안 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이것이 안되면 ‘정상적인 기업의 사업재편’이 결정적으로 장애에 봉착한다는 것이다. 말이 안되는 얘기다. 사업재편은 결국 회사를 쪼개고 붙이는 과정을 포함한다. 이것은 주주나 채권자, 그리고 근로자 등 이해관계자에게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따라서 나라의 법질서가 공정하고 투명하다면 당연히 이해관계자 간의 의견 조정이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보장해야 마땅하다.
주주총회를 보자. 주주총회를 여는 것이 무슨 범죄인가? 주주들은 회사에 돈을 낸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이 회사의 운명이 바뀌는 중대한 변화를 앞두고 주주총회를 열어 이를 잘 따져 보자고 하는 것이 터무니없는 억지인가? 주주총회 소집공고 기간을 현행 2주일에서 7일로 축소하자는 말은 더욱 어이가 없다. 주주총회를 여는 것이 무슨 ‘특공 작전’을 하는 것인가? 단지 7일 동안의 추가 공고 기간을 기다릴 수 없어서 정상 기업의 사업재편 계획이 실패로 돌아갈 것이라는 주장은 아무리 좋게 들어주려고 해도 어불성설이다.
주주총회에 대한 이런 부정적 시각은 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필자에게 떠오르는 것은 삼성 사례밖에 없다. 삼성은 이재용으로의 승계 과정에서 두 번 요란한 주주총회를 열었다. 하나는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간의 합병 관련 주주총회였고, 다른 하나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의 합병과 관련한 주주총회였다. 전자는 국민연금의 반대로 무산됐고, 후자는 주식교환비율이 적절치 않다는 논란 속에서 삼성이 전 계열사의 임직원을 동원한 총력전 끝에 가까스로 통과시켰다. 석연치 않은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이 합병을 찬성한 국민연금은 그 때문에 수천억원의 주가 하락 손실을 경험했다. 흐음. 삼성이라면 주주총회 여는 것을 걱정할 만도 하다. 특히 앞으로 삼성전자와 다른 비금융 계열사 간 합병 소지가 남아 있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특혜조항의 필요성은 더욱 그럴듯해진다.
주주총회를 열지 않거나 적당히 넘어가도록 하는 것은 사업재편의 성공과는 거의 무관한 반면, 주주의 이익을 훼손할 가능성은 대단히 크다. 그 주주들 중에는 국민 대다수의 노후를 책임지고 있는 국민연금이나 다른 연기금들이 있다.
이들은 회피해야 할 악당이 아니라 우리들의 노후를 책임지는 대리인들이다. 여야가 이 법안을 어떻게 최종적으로 수정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독소조항을 방치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거의 확실히 재벌 총수 일가를 위해 국민을 희생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전성인 | 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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