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에 대한 ‘돈 넣기’가 본격화하고 있다. 산업은행이 지난달 29일 산은과 수출입은행 주도로 4조20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발표한 이후 어제(4일) 금융감독원 주도의 채권단 회의가 열렸다. “채권단에 대한 자금 지원 압박은 없었다”는 투로 보도가 나오고 있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가.
그러나 올해만 해도 5조원이 넘는 손실을 기록했고, 분식회계와 산업은행의 관리 소홀 의혹도 있는 이 사건을, 그리고 무엇보다 대우조선해양 주식의 형태로 존재하는 국민의 재산이 증발해 버린 국부 손실 사건을 이대로 적당히 돈 넣고 어물쩍 넘어갈 수는 없다. 꼭 필요하다면 돈을 더 넣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넣어서는 안된다. 순서와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대우조선해양의 회생 가능성에 대해 객관적이고 투명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이미 그 능력이나 유인이 의심받고 있는 산업은행, 금융위원회, 그리고 그와 ‘혼연일체’인 금융감독원은 배제돼야 한다.
산업은행은 대주주이자 채권자로서 대우조선해양의 재무적 흐름을 지속적으로 관리해 왔다. 그런데 엄청난 손실과 심지어 분식회계 의혹까지 발생했다. 그런데 어찌 산업은행을 믿을 수 있는가? 금융위는 감독기구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국민의 재산을 허공에 날렸다. 그런데 잘못을 은폐할 유인이 없겠는가?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금감원이 독자적 판단을 할 수 있겠는가? 어림없다. 이들은 더 이상 국민의 돈을 가지고 잔치를 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누가 회생 가능성을 판단해야 할 것인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을 제외한 일반 채권단, 혹은 대우조선해양 그 자신이다. 그리고 그 절차는 법원이 운영하는 회생절차가 적절하다. 지금처럼 정부와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이 앞장서는 비공식 구조조정은 자칫 통상 마찰의 가능성이 있고,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집어넣을 경우 회생 가능성에 대한 판단이 산업은행이나 금융위, 금감원의 입김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대우조선해양이 정말로 살아날 자신이 있다면 주도적으로 회생절차를 신청하는 것이 정상 수순이라고 생각한다. 이 경우 대우조선해양 자신이 스스로 회생계획안을 작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노조나 기타 상거래 채권자들과의 대화와 이해관계 조정도 꼭 필요하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만일 회생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된다면, 그 다음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은 자금 지원의 통상적인 선결조건을 충족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주주나 주요 주주의 감자다. 산업은행 지분을 감자하는 것은 물론이고 금융위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도 당연히 감자해야 한다. “아니 국민의 재산을 지켜야 하는데 무슨 감자 타령인가” 하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규칙은 규칙이다. 규칙을 어기면서 조그만 이해관계를 지키기 위해 얼마가 될지도 모르는 돈을 더 집어넣는 것보다는 규칙을 지켜서 잘못된 의사결정에 대한 따끔한 책임추궁을 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정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 것이다. 국가가 이런 감자 때문에 손해를 본 부분은 대우조선해양, 산업은행, 그리고 금융위의 관련 담당자들을 상대로 책임을 추궁하는 것으로 조금이나마 복구하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국가 재산에 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에 아마 거의 확실히 검찰의 수사, 금융위에 대한 감사원의 추가 감사, 그리고 국회의 국정조사가 불가피하다.
대우조선해양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는가는 앞으로 조선업에 대한 유사한 형태의 구조조정이 즐비하게 대기 중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명백하고 설득력 있는 이유 없이 여기에 공적 재원을 투입하기 시작하면 다른 조선업체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채권단이 취할 수 있는 입지는 매우 제한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자칫 거대한 돈 잔치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잠깐 화려할 뿐인 불꽃놀이가 끝나면 다시 어둠이 찾아오듯, 섣부른 돈잔치는 국민의 재산을 함부로 사용하는 실질적인 배임행위일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은행산업의 건전성을 크게 훼손해 또 다른 금융위기의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
이제는 정공법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특히 더 이상 금융위가 기업 구조조정에 이래라 저래라 하지 못하도록 구조조정 관련 법제를 정비해야 한다. 대우조선해양 사건은 그 살아 있는 처참한 증거일 뿐이다.
전성인 | 홍익대 교수·경제학
'경제와 세상 > 전성인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0) | 2015.12.30 |
---|---|
원샷법과 재벌 (0) | 2015.12.02 |
[경제와 세상]성장률이 가라앉는 이유 (0) | 2015.10.07 |
[경제와 세상]경제민주화, 멋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0) | 2015.08.12 |
[경제와 세상]통화정책과 한국은행 ‘일 시키기’통화정책과 한국은행 ‘일 시키기’ (0) | 2015.07.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