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7월이다. 이제 3년 시한 중 달랑 6개월 남았다.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뜯는 소리인가 하면, 한국은행이 지켜야 하는 3년 단위의 중기 물가안정목표제 기간이 올 연말로 만료된다는 뜻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2년 반 전에 2013년부터 2015년까지 3년 동안 연평균 물가상승률을 2.5%에서 3.5% 사이에서 유지하겠노라고 공언했다. 연평균 물가상승률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를 두고 약간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예를 들어 전년도말 대비 당해연도 말의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로 연간 상승률을 측정하고 이를 3년 평균한 것을 준거로 삼을 수 있다.
이제 심판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성과를 보기로 하자. 위 계산방식을 적용할 때 2013년과 2014년 물가상승률은 각각 1.1%와 0.8%다. 따라서 당초 공언했던 목표 범위의 바닥인 2.5%라도 지키려면 올해 상승률이 적어도 5.6%가 돼야 한다. 올해 상반기 물가상승률이 1%도 안됐던 것을 감안할 때, 한국은행이 물가안정목표를 준수할 확률은 0이다.
그런데 한국은행 통화정책 담당자들은 천하태평이다. 세상에서 거지 다음으로 편한 직업이라는 교수조차도 요새는 당초 약속한 논문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승진에서 탈락하거나, 심한 경우 학교를 떠나야 한다. 그런데 3년 평균은 고사하고, 지난 30개월 중 한 번도 물가상승률이 목표 범위 안에 들어갔던 적이 없건만, 금융통화위원 이하 한국은행 고위 임직원들 중 어느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전통적으로 한국은행 문제를 얘기할 때 가장 중요한 가치는 “한은 독립성”이었다. ‘재무부 남대문 출장소’를 청산하고 명실상부한 중앙은행으로 우뚝 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한은 독립성은 어느 정도 확보됐다. 요즘 문제는 “한은 일 시키기”다. 도무지 목표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없다. 금리를 인하하고도 물가를 띄우지 못했다면 불가항력이라고 넘어갈 수도 있다. 목표가 비현실적이니 목표를 바꾸자고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이 중 어느 것도 하지 않고 오히려 거짓말에 가까운 사실 왜곡을 택했다.
예를 들어 지난해 7월에 전망한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2.7%였고, 지난해 10월에 발표한 수정 전망치는 2.4%였다. 이게 말이 안되는 수치라는 것쯤은 한국은행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거짓말에 가까운 전망을 한 이유는 “금리 인하 안하고 버티기”를 정당화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한은 일 시키기”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은행에 일을 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경제의 현실에 맞는 목표를 부과해야 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목표는 바람직하지도 않고, 한국은행이 지킬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고령화와 저성장이 고착화되는 현재 추세를 감안할 때 물가안정목표제는 과감히 폐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성장과 물가 모두를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해야 할 시점이다. 필자는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의 합계인 경상성장률을 일정 범위 내에서 유지하는 것을 통화정책의 목표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
한국은행 부문별 경제전망, 4월 이후 성장률 조정 요인_경향DB
왜 하필 경상성장률인가? 통화정책이란 어차피 총수요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성장으로 나타날지 물가로 나타날지는 잘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니 그것을 구별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경제가 저성장, 저물가 시기로 진입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성장촉진은 물론이고 심지어 물가상승조차도 우리에게는 축복이다. 특히 세수 확보에 비상이 걸린 현실을 생각하면 세수와 가장 상관관계가 높은 경상성장률에 정책의 관심을 집중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음으로 고민해야 할 점은 한국은행이 이런 목표를 부여받고도 아무 일도 안하고 “내년에는 잘 될 거야”라는 넋두리만 할 경우 어찌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경상성장률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한둘이 아니어서 한국은행이 “요리 빼고 조리 도망가도” 합리적 의심의 정도를 넘어서는 증거를 들이대며 추궁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냥 “잘 해 주세요”라고 백지위임을 하기에는 최근의 행태가 너무 치졸하다. 금통위원의 양식에 맡기는 것이 가장 좋은데 그것이 안되니 문제다. 봉급을 두 배로 주되, 목표를 못 지키면 다 토해 내라고 할까? 이 부분은 필자도 답이 없다. 끌끌.
전성인 | 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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