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메르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추경의 필요성이 공개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특히 기획재정부는 하반기 경제전망 발표를 앞두고 추경의 필요성을 저울질하고 있는 듯하고, 최경환 부총리도 그 가능성을 굳이 부정하려 하지 않고 있다. 한편 한국은행은 어제 기획재정위 업무보고에서 올해 물가상승률을 1% 내외로 전망하면서도 제로금리를 시행했던 선진국과 우리나라는 다르다면서 추가적인 금리 인하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추경이 과연 필요한 것일까. 아니면 팽창적인 통화정책이 필요한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재정적자를 감수하는 추경의 경제적 함의에 대한 냉정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번 추경은 전형적인 적자 추경이다. 왜냐하면 상반기에만 이미 10조원이 넘는 세수 결손이 발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국고가 텅 빈 상황에서 지출 확대를 하자는 것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국채 발행이다. 문제는 국채 발행은 통화정책적 차원에서 달갑지 않은 부작용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장기 금리의 상승이다. 국채 발행물량을 누군가가 자동적으로 인수해 주지 않을 경우 넘쳐나는 국채는 모든 장기금리를 상승시킬 것이다. 장기금리의 상승은 모처럼 한은이 바들바들 떨면서 지난 11일 기준금리를 인하했던 금리 하락 효과를 단숨에 집어삼킬 수도 있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구축효과라고 한다.
적자 추경은 또 다른 부정적 측면도 가지고 있다. 그것은 현재 세대가 미래 세대의 호주머니를 터는 부의 세대 간 이전 현상이다. 재정적자는 당연히 국가부채의 증가를 초래한다. 이 국가부채는 국민 중 누군가가 갚아야 한다. 만일 이번 추경을 통해 우리 경제가 단기간에 소득증가를 경험하게 된다면 정부는 세수 증대를 통해 큰 무리 없이 부채를 상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이번 추경이 그냥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끝난다면 이 부채는 나중에 미래 세대가 갚는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부의 세대 간 이전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은 어떠한가. 국가부채 증가를 가까운 장래의 세수 증가에 의해 큰 문제 없이 상환할 수 있는 상황인가. 애석하게도 거의 아니다. 이번 정부 들어 세수는 언제나 예측치를 거의 10조원 이상씩 밑돌았다. 올해도 그렇다. 아마 이런 추세라면 이번 정부 임기말이 되면 국가부채는 50조원 이상 증가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디서 세수 증가가 나타나서 국가 부채를 상환한단 말인가. 재정적자는 그대로 미래 세대의 부담으로 차곡차곡 쌓일 뿐이다.
결국 무책임한 재정적자는 우리가 미래 세대에 대해 자동적으로 세금을 걷는 의사결정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것은 그것 자체로 미안한 일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신봉하는 민주주의의 대원칙을 크게 훼손하는 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미래 세대는 아직 정치 현장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없기 마련인데, 우리는 그들이 없다는 틈을 타서 그들에게 과세하는 결정을 우리들 맘대로 내리기 때문이다. “대표 없는 과세 없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는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이다. 재정적자가 이런 비판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재정지출 대상이 육아, 보육, 청소년 직업훈련 지원 등 미래 세대를 위한 경우 정도이다.
연도별 추경 (출처 : 경향DB)
따라서 적자 추경은 매우 신중하고 제한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우선 단기적인 경기 활성화의 책무는 조금 더 많이 한국은행의 책무가 되어야 한다. 지금 정부는 가계로 말하자면 돈을 못 벌고 매번 가계부가 펑크나는 집안에 비유할 수 있다. 이런 집이 자꾸 빚을 내겠다고 하는 것은 사기성이 농후한 행동이다. 이러다가 자칫 일본 꼴이 나면 그 다음에 정부는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굳이 적자 추경을 할 경우에도 한국은행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장기금리의 상승을 막기 위해 한국은행이 추가로 돈을 풀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자 추경의 규모는 단순히 기재부가 정할 것이 아니라 한국은행과 긴밀하게 협의해야 한다. 물론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고 한은이 시장에서 이를 매입하면 결과적으로 정부가 한국은행에 국채를 인수시켜 본원통화를 증발시킨 것과 동일하다. 이런 형태는 인플레이션 시기에는 금기시되는 행동이다. 그러나 디플레이션 위험에 직면한 현재 우리 경제에서는 역설적으로 오직 이런 방식에 의한 추경만이 그래도 단기적으로 시장 왜곡을 최소화하는 방식이다.
전성인 | 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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