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워싱턴의 불꽃놀이가 한창이다. 지난 주말 이후 론스타와 대한민국 정부 간에 5조원짜리 투자자-국가소송(ISD)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름대로 이 문제를 따라왔던 필자로서도 의견이 없을 수 없다. 이하에서는 그 몇 가지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우선 론스타의 제소 자격 부분이다. 산업자본인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한 것은 우리나라 은행법상 금지된 행위였다. 은행법에 의하면 이 금지는 무조건적이며, 감독당국이 재량적 판단으로 이 금지를 면제해줄 권한도 없다. 그런데 론스타는 해외 산업자본 자회사를 누락시킨 허위 승인서류를 통해 인수 승인을 얻었다.
그뿐만 아니라 승인신청서를 낸 이후 승인을 받기도 전부터 투자자를 바꾸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리하여 LSF IVB Korea I, LP와 같은 회사를 추가시킨 후 새로 바뀐 동일인에 대해서는 승인을 받지 않은 채 외환은행 주식을 인수했다. 이것이 한·벨기에 투자보장협정에서 보호하기로 양국 정부가 합의한 적절한 투자행위인가. 당연히 아니다. 왜냐하면 투자보장협정은 투자유치국의 국내 법률을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HSBC와의 매각 협상 승인이 지연된 부분이다. 이것은 대략 2007년부터 2008년 사이의 일이다. 그런데 이때는 론스타의 산업자본 문제가 처음으로 시민단체에 의해 제기된 시기다. 구체적으로 참여연대와 경제개혁연대는 2007년 3월말 외환은행 주주총회에 참석해서 론스타가 산업자본인지 여부를 질의했고, 연이어 금융감독위원회에 산업자본의 은행인수 금지가 외국인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되는지를 서면질의했다. 금융감독위원회의 답변은 “예외 없이 적용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론스타가 보유한 해외 산업자본 자회사에 대해 조금 더 정밀한 조사가 시작되었고, 금융감독위원회와 론스타는 2007년 여름부터 2008년 가을까지 1년 넘게 “자료 내라” “못 낸다” 식의 공방을 계속 했다. 론스타가 산업자본인지 여부가 관건인 상황에서 론스타 스스로가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이 자료도 받지 않고 매각 승인을 내줄 수 있단 말인가. 시간을 질질 끈 것은 오히려 론스타다.
셋째, 창피할 정도로 무원칙한 우리나라 감독당국의 감독행정 부분이다. 우리나라 감독당국은 론스타에 대한 올바른 감독자라기보다는 오히려 공범에 가까울 정도로 론스타를 비호했다. “산업자본 요건에 해당했지만 산업자본이라 보기 어렵다”는 궤변이 그것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문제는 이런 감독당국의 행태가 론스타의 위법한 투자행위에 면죄부를 부여하거나 론스타에 국법의 규정과 다른 기대를 형성할 정당한 사유를 제공했는가 하는 점이다.
14일 오전 서울 서초동 민변 사무실에서 열린 '론스타 ISD 쟁점 설명회'에서 노주희 민변 국제통상위원이 관련 설명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솔직히 많은 사람이 이 점을 걱정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무조건 이 문제를 덮으려 하고, 어떤 이는 무조건 론스타가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자는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덮으려고 해서 덮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것이 바람직하거나 정당한 것도 아니다.
쉽게 예를 들어 보자. 도둑이 남의 집 담을 넘어 물건을 훔치려고 하는데 순찰을 돌고 있는 경찰이 맘에 걸렸다. 그래서 둘이 적당히 말을 맞추고(또는 모종의 거래를 하고) 경찰이 일부러 한눈파는 사이에 이 도둑이 남의 집 담을 넘었다. 이 행위는 합법인가. 적어도 도둑은 이런 행위가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기대를 형성하게 되었을까. 당연히 아니다. 경찰이 무어라 했건 남의 집 담을 넘은 것은 잘못된 것이고, 달라진 것이 있다면 추가로 경찰에 대해 그 책임을 추궁하는 것뿐이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정정당당하게 나가야 한다.
물론 이렇게 정정당당하게 나갔다가 더 크게 깨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진실과 침묵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하자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일개 대학교수도 알고 있는 팩트를 론스타가 모를 수 없고, 그것을 물고 늘어지는 것이 론스타에 유리하다면 론스타가 그것을 이용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따라서 “경찰이 봐 주었다면 남의 집 담을 넘은 사람도 도둑으로 볼 수 없다”는 해괴한 논리를 버려야 한다. 도둑을 도둑이라 칭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바라는 국가의 모습이고, 국제적 평판의 측면에서도 더 투명하다. 그리고 론스타로부터 부당이득을 반환받기 위한 추후의 노력을 위해서도 이것은 필수적이다. 멍청하거나 교활한 금융관료의 처벌은 별개의 문제다.
전성인 | 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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