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성장률이 가라앉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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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세상/전성인 칼럼

[경제와 세상]성장률이 가라앉는 이유

by eKHonomy 2015. 10. 7.
한국 경제가 망해가고 있다. 이번 정부가 창조경제 운운하며 요란을 떨었지만 그 성적표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실질 경제성장률 2%대, 명목 경제성장률 3%대가 그 적나라한 민낯이다. 작년 국회에 올해 예산안을 제출하면서 전망한 6%대 명목 성장률은 희대의 사기극으로 막을 내리려 하고 있다.

변명거리도 별로 없다. 메르스 사태를 얘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작년에는 세월호 사고가 있었다. 올해 성장률은 작년 동기에 대비해서 계산하는 것이기 때문에 세월호 사고를 감안할 경우 올해는 원래 성장률이 더 잘 나와야 맞다. 따라서 메르스 사태를 감안해도 특별히 성장률이 가라앉을 이유는 별로 없다. 현재 성장률은 그저 우리의 숨김없는 실상일 뿐이다.

따라서 지금 경제정책의 최우선은 성장이다. 성장하지 않겠다는 것은 모든 짐을 우리 후손들에게 다 떠넘기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국민연금 부채도, 급증할 재정적자도 다 떠넘기고 우리만 잘 먹고 떠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장에 불편한 시각을 보이는 일부 진보진영은 문제의식을 다시 점검해 봐야 한다. 성장하지 않고는 가계부채 문제도, 재정적자 문제도 해결할 수 없고, 그토록 원하는 복지사회의 구현도 모두 신기루에 불과할 뿐이다.

성장이 절체절명의 과제라는 전제를 받아들일 경우 진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부분은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이게 쉽지 않다. 다만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이렇게 하면 성장할 수 없다”는 소극적, 부정적 진단은 쉽다.

첫째, 규제완화로 성장할 수 없다. 규제가 대못이고 전봇대고 암 덩어리라면서 지난 8년 동안 신나게 완화했다.

삼성의 입김에 휘둘렸던 참여정부까지 포함하면 13년 동안 완화했다. 그런데도 성장률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이제는 이걸로 안된다는 것을 배울 때도 됐다.


둘째, 자본 축적만으로 성장할 수 없다. 경제개발을 시작하던 박정희 시절에는 자본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따라서 성장의 발목을 잡는 것은 부족한 자본이었고, 자본 축적은 바로 그런 발목잡기를 해소하는 성장의 묘책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정반대다. 자본은 우리나라에 넘쳐나고 전 세계적으로도 넘쳐난다. 자본의 수익률은 바닥을 기고 있고, 약간의 수익률 전망만 있으면 어디든 달려가는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심지어 시중 금리보다 1%만 더 높은 금리를 약속하면 노인정의 할아버지 할머니들 돈도 다 빼내 올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 축적을 더 하라고 투자 장려 정책을 쓰는 것은 홍수 난 곳에 물 붓는 격이다. 가뭄에 물 붓는 것은 “단비”와 같은 정책이지만 수해 난 곳에 물 붓는 것은 정책이 아니다.

셋째, 임금을 깎아서는 성장할 수 없다. 국내 노동자 임금을 아무리 깎아도 제3세계 노동자의 임금처럼 만들 수는 없다. 따라서 이것은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는 게임이다. 따라서 적정 임금을 주고 좋은 노동자를 고용하도록 정책을 펴야지, 임금을 깎고 생산성이 낮은 사람들만 고용하라고 유도하는 것은 잘못된 정책이다.

넷째, 기업의 성과와 국민경제의 성과는 언제나 같은 것이 아니다. 삼성이 돈 번다고 꼭 우리나라 경제가 그 성과를 전부 공유하는 것이 아니고, 롯데가 돈 번다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부자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해외 공장이 있으면 그쪽 노동자들이 좋아지고, 해외에서 부품을 조달하면 그쪽 기업이 좋아지고, 외국인 주주가 많으면 그 주주들이 좋아질 수 있다. 우리 경제가 이익을 보는 부분은 국내 고용이나 하청, 국내 주주, 그리고 법인세 정도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로 구성된 노동자에게는 억압적 정책을 펴고, 우리나라 협력업체를 쥐어짜고, 법인세도 깎아주고 그 대가로 광윤사를 행복하게 하는 정책이 과연 국민경제적으로 수지타산이 맞는 정책인가.

그렇다면 이런 소극적, 부정적 진단 말고 성장을 위해 좀 더 적극적, 긍정적인 해법은 없는가. 아직 없는 것 같다. 다만 해법이 추구해야 할 기본적인 방향은 어렴풋하게 짐작해볼 수 있다.

첫째, 노동을 우대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 자본은 홍수, 노동은 가뭄이다. 따라서 정책적 지원은 노동 쪽에 넣어야 한다. 노동자에게 적정임금을 주어야 하고, 노동자들이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인적 자본 투자를 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기업에 투자를 빌 것이 아니라 노동자에게 인적 자본에 투자하도록 빌어야 한다.

둘째, 경제질서를 정상화해야 한다. 세금 제대로 다 걷고, 부당 노동행위 적발하고, 협력업체 착취하는 것도 바로잡고, 대기업의 시장지배력 남용행위도 통제해야 한다. 이제까지 이것은 공정 경쟁의 차원에서만 그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런 정책은 성장정책으로 재평가받아야 한다. 경제 질서가 제대로 서야 새로운 산업이 만들어질 수 있고 우리 경제의 성장에 가장 필요한 생산성 향상과 기술혁신이 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성인 | 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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