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경영 참여 포기, 잘못된 결정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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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인 칼럼

국민연금 경영 참여 포기, 잘못된 결정 아닌가

by eKHonomy 2019. 2. 15.

지난 2월1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이하 기금위)는 대한항공과 한진칼에 대한 경영 참여 여부를 논의한 결과 대한항공에 대해서는 경영 참여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단기매매차익 반환이 문제가 되었다는 언론 기사들이 많았다. 


회사 주식을 경영 참여 목적으로 취득한 후 6개월 미만인 단기로 보유하다가 매매해서 이익을 얻을 경우, 그 이익을 모두 회사에 반환하도록 한 소위 ‘10% 룰’이 문제가 되었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주식을 10%를 초과해서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경영 참여를 선언하면 이런 이익을 모두 반환해야 해서 손해가 나기 때문에 경영 참여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적어도 많은 언론 기사들이 내겐 그렇게 읽혔다.


그런데 이런 기사들의 설명이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그런가? 첫째,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지적했듯이 단기매매차익의 반환은 국민연금이 경영 참여 목적을 선포한 이후의 매매분부터 적용된다. 따라서 작년이나 재작년에 발생한 단기매매차익은 설사 경영 참여를 지금 선언한다고 해도 반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럼 이것 때문에 경영 참여를 포기했다는 언론 기사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래서 다시 언론 기사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경영 참여를 했다고 가정할 경우” 이런 표현이 눈에 들어왔다. 즉 기금위는 과거 단순 투자 목적으로 보유했던 주식 매매 자료를 가져다가 사실과 다르게 이 기간 중에 경영 참여를 했다고 가정한 후, 6개월 미만의 단기매매차익을 계산해서 그 수치를 발표했던 것이다. 그러고는 만일 “앞으로 경영 참여를 한다면” 국민연금은 대략 이 정도의 차익을 반환해야 할 것이라고 겁을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을 앞뒤 적당히 자르고 들으니 마치 “지금 경영 참여 선언을 하면 과거의 이익 중 이 금액을 지금 당장 반환”해야 하는 것처럼 들렸던 것이다.


그 말의 뉘앙스가 어찌 되었건 그 수치는 가상이니까 그렇게 계산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아니다. 적어도 학부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은 바로 손들고 반론을 제기할 것이다. 이게 두 번째 의문이다.


노벨경제학상을 탄 유명한 경제학자 중 1995년에 수상한 로버트 루카스 시카고대학 교수가 있다. 그의 이론 중에 소위 ‘루카스의 비판’이라는 것이 있다. 간단히 말해서 ‘사람들의 행동은 주어진 제도하에서 최적 선택을 한 결과이기 때문에, 제도가 바뀌면 그 행동도 바뀐다. 따라서 제도 변화의 효과를 계산하면서 과거의 행동을 준거 자료로 삼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금위가 한 추정이 딱 여기에 들어맞는 것이다. 그러니 틀렸다.


다시 생각해보자. 작년과 재작년에 국민연금은 단순 투자 목적으로 대한항공 주식을 보유했고 단기매매차익은 반환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맘대로 매매를 해도 상관없었다(물론 장기투자자인 국민연금이 ‘팥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단타매매를 일삼는 것이 바람직한가 라는 의문도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별개의 논점이다). 그런데 경영 참여를 선택하면 새롭게 ‘10% 룰’을 적용받게 되고 그러면 국민연금의 매매패턴은 변화할 것이다. 단기매매차익을 반환해야 하는 줄 뻔히 알면서 단타매매를 일삼을 바보가 있겠는가? 금융투자회사에 중개수수료를 나눠주는 산타클로스 역할을 자임하지 않는 한 당연히 단기매매는 대폭 줄고 반환 추정액 역시 대단히 작아질 것이다. 그래서 기금위 계산이 엉터리가 되는 것이다.


어떤 언론은 이를 두고 금융위원회가 유권해석 요청에 답을 하면서 6개월 이상 보유하면 매매차익을 반환할 필요가 없다고 알려주기까지 했는데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이 이를 무시했다는 취지로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이런 가능성은 믿지 않는다. 복지부와 국민연금이 한두 살 먹은 어린애들도 아닌데 6개월 이상 보유하면 매매차익 반환을 안 해도 된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문득 기억 저편에서 상황이 하나 생각났다. 작년 6월 하순경. 그때 경제민주화를 독려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책임자로 하는 경제민주화TF가 출범했다. 이 TF는 그 후 몇몇 시민단체와 면담을 가졌는데 나도 한 자리에 참석했다. 그 자리에는 금융위 부위원장과 복지부 차관도 있었다. 대화 중에 경제민주화의 중요 논점으로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의 스튜어드십 코드 채택을 장려하고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자 복지부 차관이 자본시장법 제약 때문에 쉽지 않다는 취지로 발언했고, 금융위 부위원장도 그런 문제점을 알고 있고 협의 중이라는 취지로 대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경영 참여를 하면 예를 들어 ‘5% 룰’에 따라 자주 공시를 해야 해서 번거롭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국민연금이 주식 운용을 도맡아 하는 것도 아니고, 위탁운용사들도 많이 있는데 그 부담이 정말 크냐? 공시하라면 하면 되지 그것 때문에 경영 참여를 못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대략 이런 취지로 반론했던 것 같다.


이 에피소드를 꺼내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복지부가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에 대해 대단히 소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이런저런 빠져나갈 궁리만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다른 하나는 주요 제도적 쟁점에 관해 복지부와 금융위가 서로 긴밀하게 협의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다시 본 나의 감상평은 다음과 같다. 복지부와 국민연금은 경영 참여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이유가 맘껏 단타매매를 하면서 금융투자회사에 듬뿍 보너스를 주고 싶기 때문인지, 아니면 국민연금의 주식 보유 대상이 되는 대기업들의 로비 때문인지는 더 확인해봐야 한다. 그리고 룰은 손금 보듯이 환하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국민들이 헷갈리기 쉬운 부분을 짚어내 그것 때문에 경영 참여를 못하겠노라고 결정해버린 것이다. 


쓰고 보니 매우 심각한 문제제기가 되고 말았다. 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인 위원회에 관한 일인 데다 지난 1월 대통령이 문제 있는 경영진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의 필요성을 역설했기 때문이다. 과연 누가 잘못 생각한 것일까? 복지부는 이의가 있다면 명백하게 해명해야 할 것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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