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증권선물위원회(이하 ‘증선위’)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바’)를 고의 분식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콜옵션 고의 누락 혐의로 지난 7월 삼바를 검찰에 고발한 데 이어 약 4개월 만에 다시 고발에 나선 것이다. 이것으로 시민단체가 이 문제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지 대략 2년 만에 진실규명의 최종적인 임무는 검찰로 넘어갔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이 과정의 상당 부분을 가까이에서 살펴볼 기회를 가졌다. 따라서 만감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개인적인 소회는 잠시 뒤로하고, 우리 사회가 이번 삼바 사태를 계기로 어떤 부분을 앞으로 고쳐 나가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첫째, 늘 확인하는 일이지만 총수 일가의 이익 앞에만 서면 재벌은 이성을 상실한 채 일을 처리한다는 점이다. 이번 경우 역시 누가 보더라도 말이 되지 않는 처사였다. 똑같은 회사를 여름에는 19조원으로, 가을에는 7조원으로 평가하는 회계법인. 자체 평가액과 시장 평가액의 괴리를 언급하며 왠지 가치평가 수치를 조정해야 할 것 같은 인상을 풍기는 물주. 자본잠식의 가능성을 깨닫게 된 후, 계약서를 소급해서 다시 조작할까, 지배력을 잃었다고 할까, 아니면 지배력은 계속 유지하는데 기업가치를 확 깎을까를 놓고 고민하는 회사. 정말 제정신이 아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모두 번듯한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고, 그중 일부는 진리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자연과학도들도 있었다(인문과학도나 사회과학도가 거짓에 헌신한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총수 일가의 이익이라는 광풍 앞에 이성은 설 자리가 없었다. 그럴듯하게 만들어 놓은 이사회라는 감시 장치도 먹통이고 외부 감사라는 자본주의적 감시장치도 돌아가지 않았다. 즉 총수 일가의 이익 앞에 교과서에서 보는 자본주의는 없었다.
둘째, 역시 늘 확인하는 일이지만 삼성에 관한 한, 금융위와 증선위는 일을 하기보다는 일을 하지 못하게 막는 조직이었다. 정말 큰 문제다. 도대체 청와대에 있는 높으신 분들은 이런 현실을 알기나 하는 것일까? 증선위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관료뿐만 아니라 때로는 그 주변의 금융위 관료들까지 이러저러한 압력성 발언을 했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어쩌면 과거 거래소 상장규정 개정에 대한 특혜 시비가 이런 행동에 부분적으로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와 무관한 관료들까지 부정적 관점에서 개입했다는 정황은 단순히 특혜 상장 연루 의혹만으로는 금융위의 행동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셋째, 금융위의 이런 행동은 결국 투자자의 손해로 연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금융위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금융감독원과 협력했더라면 어쩌면 훨씬 더 이전에 이 문제가 깔끔하게 결론나고 투자자의 피해와 시장의 불확실성을 줄였을지도 모른다. 특히 이번 증선위 판단에 결정적 증거로 작용한 삼바 내부문건을 두고 증선위 관계자가 회의 중에 “이 문건은 내부에서 나온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미확인 소식은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과연 증선위원이 내부고발자 보호를 규정한 여러 법률의 취지를 잘 준수하고 있는지 의심하게 만든다.
넷째, 회계원칙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준수, 그리고 이에 대한 엄정한 관리체계로 전면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회사가 일정한 정도의 재량권을 가지고 장부를 작성하는 제도는 회사가 동시에 그 재량권의 합리적 행사에 대한 의무를 부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재량권이 자본잠식을 회피하기 위해 계약서를 소급해서 조작하거나, 필요한 경우 사후적으로 콜옵션 평가불능 의견서를 원하는 대로 발급받아 활용하는 것을 의미할 수는 없다.
특히 이번 삼바 사태는 우리나라 감리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불필요하게 옥상옥의 체제로 되어 있음을 잘 보여준다. 감독당국인 금융감독원이 감리 의견을 낸 후 이를 민간 감리위원회가 다시 심의하고, 그 결과를 다시 증선위가 판단하고, 그에 대한 제재는 다시 금융위가 최종 결론을 내린다. 누가 봐도 지나치게 중복에 중복이다. 감리위원회는 적어도 금감원 차원의 자문기구로 내려 최초의 금감원 감리의견이 잘 나오도록 도움을 주는 기능을 하도록 해서 감리의 품질도 높이고 의사결정 단계도 단축해야 한다.
다섯째,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삼바 사태가 현재와 같은 진로를 잡은 것은 기적이다. 그래서 이번 삼바 사태는 “꿈★은 이루어지고 세상에는 뜻하지 않은 원군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것은 여러 명의 의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중 몇 분은 언론에 이름이 나왔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이름은 수면 아래에 잠재해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사람들이 서로의 위치에서 자신의 일을 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나는 이 자리를 빌려 그분들의 용기와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나중에 어쩌면 그 이름들은 역사 속에 다시 등장하게 될지도 모른다.
여러 사람들이 지적했지만 삼바 사태는 지금이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 검찰이 이번 고발 사태를 어떻게 수사하고, 그 칼날이 과연 이 사건의 본령이라고 할 수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와 제일모직-(구)삼성물산 간 합병의 적정성으로까지 향할 수 있을지가 일단 관건이다. 또 검찰의 수사범위가 어떠하든, 그 결론에 대해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도 지켜볼 문제다. 과연 문재인 대통령이나 그 뒤를 이을 대통령이 과거의 관행처럼 재벌 총수의 불법행위를 사면해 줄 것인지, 아니면 이번만큼은 원칙을 지킬 것인지도 우리 사회가 주시해야 할 부분이다. 삼성이 위태로우면 나라가 위태롭고, 총수가 위태로우면 삼성이 위태롭다는 논리가 언론과 학계를 지배할지 여부도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이미 ‘왜 도둑을 잡아서 우리 마을 집값을 떨어뜨렸냐’는 식의 원망이 언론의 1면을 장식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문제는 우리들이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어제 참여연대는 다시 통합 삼성물산의 분식회계 의혹에 대한 특별감리를 금융감독원에 요청했다고 한다. 그렇게 가는 것이다.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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