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구조개혁’은 정치적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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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정동칼럼]‘구조개혁’은 정치적 문제다

by eKHonomy 2015. 1. 4.

지난해 12월22일 정부는 “2015년 경제전망”과 “2015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다. 첫 문서의 한 줄 요약은 “3.8% 성장률은 과장”이라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이래의 도저한 낙관, 또는 엉터리 예측이 이번에도 되풀이됐다. 예나 지금이나 민간소비가 3% 이상 증가할 거라고 전망했지만 실적치는 줄곧 1%대였다. 수출과 투자 증가율 역시 ‘희망사항’을 지나치게 많이 담았다.

경제정책방향은 구조개혁, 경기대책, 리스크 관리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경기대책은 “시중에 떠도는 돈을 투자로 끌어들이는 수단” 일색이다. 예의 규제 완화만으로는 부족하니 수익성까지 보장해 주자는 게 금년 정책의 고갱이다. 아예 한 항목으로 독립한 “임대주택시장 활성화”에는 택지 인센티브, 금융지원, 세제지원 등 열 가지 이상의 정책수단이 동원됐다. 토목건설에도 “손익공유형 투자방식”(BOA)을 도입해서 철도, 경전철, 나아가서 의료, 교육 쪽 건설에 적용할 예정이란다. 한마디로 “돈 많은 사람들이여, 한몫 챙겨 줄 테니 건설에 뛰어들라”는 얘기다.

진정한 문제는 구조개혁에 있다. 나도 공무원연금이나 군인연금, 사학연금을 국민연금으로 일원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또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를 줄이지 않으면 현재의 노동문제를 풀 수 없다는 데 동의한다. 교육개혁은 더욱더 절실하다. 현재의 구조가 자아내는 각종 불평등을 해소하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의 공공부문, 금융부문, 그리고 노동과 교육부문 개혁은 과거의 개혁 방향, 이미 실패로 판명난 ‘줄푸세’를 답습하고 있다. 시장과 경쟁의 요소를 더 많이 도입하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믿음이 바로 현재 위기의 원인인데도 말이다. 이뿐만 아니라 정부는 이 개혁을 단기에 군사작전처럼 해치우려 하고 있다.

구조개혁이란 과거의 제도와 관행을 바꾸지 않고선 현재의 위기를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인식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의 가장 성공한 구조개혁을 꼽는다면 단연 전후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복지국가체제일 것이다. 한국으로 말하자면 농지개혁이 바로 그런 구조개혁이었다. 과거의 질서인 지주제를 해체했기 때문이다. 구조개혁이란 한마디로 고도의 정치과정이요, 높은 수준의 사회적 합의를 필요로 한다.

정부가 성공한 구조개혁으로 든 최근의 사례를 봐도, 예컨대 독일의 하르츠개혁, 핀란드의 교육개혁, 영국의 연금개혁 모두 하나같이 장기간에 걸친 사회적 합의를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자본가 대표가 개혁 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 사회적 합의를 끌어낸 사례가 많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즉 기득권 계급이 솔선수범해서 개혁 비용을 가장 많이 분담할 때, 그리고 정부가 불편부당한 태도를 취할 때 비로소 구조개혁은 성공할 수 있다.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데 동의해도 개혁 방법에 관해서 또 한번 백가쟁명일 테다. 나라면 “지속가능한 연금”이라는 주제로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그리고 퇴직연금까지 지속가능한 노후 복지를 설계하는 일부터 시작할 것이다. 공무원들의 ‘특혜’를 부각시켜 공무원연금을 깎고, 다음에는 군인과 사학연금을 건드리고, 다시 국민연금을 개혁하는 식은 끝없는 갈등만 낳을 것이다. 사회적 불평등을 줄이는 방법에 대한 총체적 그림 없이 노동문제와 교육문제만 따로 떼어 해결할 수는 없다. 예컨대 만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가 지금처럼 심하지 않다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가 해고에 목숨을 걸지는 않을 것이며, 그런 격차의 대부분이 불공정한 하청관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도 분명하다. 실업보험의 확충과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도 노동시장 개혁의 전제조건이다.

노사정위원회가 지난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본위원회의를 열어 노동시장 구조개선의 원칙과 방향에 대해 기본합의안을 채택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출처 : 경향DB)


이런저런 숱한 이견을 조정하는 사회적 합의 없이, 신종 쿠데타를 동원해서 그저 ‘줄푸세’를 실행하려 한다면 이 정권은 집권 3년차에 진정한 위기가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엉터리 경제전망, 투기적 경기대책에 따른 경제위기와 더불어, 극심한 사회적 혼란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정태인 | 칼폴라니연구소 창립 준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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