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은행이 지역주민 것인가
본문 바로가기
김상조의 경제시평

지방은행이 지역주민 것인가

by eKHonomy 2014. 1. 14.

한국 은행산업의 해묵은 과제 중 하나가 우리금융지주의 민영화다. 1997년 외환위기의 여파로 부실화된 한빛은행(현 우리은행), 평화은행(피합병), 경남은행, 광주은행, 하나로종금 등을 묶어 우리나라 최초의 금융지주회사로 설립된 것이 작금의 우리금융지주다. 여기에 총 12조8000억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되었는데, 지금까지 5조7000억원만 회수되었을 뿐이다.


우리금융지주의 성과는 너무 실망스럽다. 2007년 2만5000원대까지 갔던 주가는 지금 반토막이 났다. 크고 작은 금융사고도 끊이지 않고 있다. 2001년 금융지주회사로 출범할 때 내세웠던 국내 선도은행 및 글로벌 금융그룹으로의 도약은 언감생심이다. 정부(예금보험공사)가 최대주주로 있는 한 경영의 자율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제약요소라 할 수 있다. 정권교체 때마다 지주사 회장과 은행장이 낙하산으로 내려왔다가 임기도 못 채우고 쫓겨나는 일이 반복되는데, 어찌 경쟁력 제고를 논할 수 있겠는가. 우리금융지주는 물론 금융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도 조속한 민영화가 불가피하다. 최근 철도 및 의료산업을 필두로 민영화 논란이 달아오르고 있지만, 우리금융지주의 경우는 결코 같은 범주에 넣을 수 없는 문제다. 나는 우리금융지주 민영화를 지체시키는 어떠한 논리도 기득권 수호를 위한 핑계일 뿐이라고 단언한다.


이번 민영화 작업은 네 번째 시도다. 일괄매각을 추진하다가 실패한 과거 경험을 교훈 삼아 이번에는 지방은행계열·증권계열·우리은행계열 등 3개 그룹으로 나누어 매각하는 분리매각 방식을 택했고, 작년 말에 지방은행계열과 증권계열은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는 데까지 진도가 나갔다. 우리은행이라는 본체를 매각해야 하는 가장 어려운 작업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지금까지는 예정된 수순을 밟고 있다.


우리금융 민영화 방안 발표(출처 :경향DB)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특히 경남은행과 광주은행 등 2개의 지방은행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상식을 의심케 하는 정치권의 논리가 횡행하고 있다. 그 대부분이 6월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지역 정치인들의 혹세무민 선동이지만, 선거 국면의 특성상 2개의 지방은행 나아가 우리금융지주의 민영화를 왜곡·지연시키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 핵심은 ‘지방은행의 지역환원’ 논리다. 지방은행은 말 그대로 특정 지역만을 영업구역으로 하는 은행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방은행의 소유권을 그 지역주민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의미의 지역환원론은, 경제적으로는 아무런 합리적 근거가 없는 것이지만, 정치적으로는 강한 호소력을 갖고 있다. 문제는 방법이다. 경남은행과 광주은행 모두 그 지역의 상공인연합이 인수후보로 나섰다. 여기서부터 틀렸다. 지역 상공인은 해당 지방은행의 주된 차입자다. 그런데 차입자가 은행의 최대주주가 된다고? 그런 은행이 건전하게 경영될 것을 기대한다면, 차라리 기적을 바라는 것이 낫다. 은행은 보조금 주는 자선단체가 아니다.


더구나 지역 상공인들이 인수자금을 다 마련할 수도 없어서 사모펀드를 끌어들였다. 광주은행의 경우 컨소시엄 구성에 실패했지만, 경남은행의 경우에는 MBK파트너스가 참여한 경은사랑컨소시엄이 본입찰에까지 나섰다. 이쯤 되면 무법천지다. 론스타 사태를 거치면서 은행법상 사모펀드의 산업자본 여부 판단기준은 명확하게 확립되었고, 그에 따르면 MBK파트너스가 참여한 경은사랑컨소시엄은 결코 은행의 대주주가 될 수 없는 산업자본이다. 즉 인수는커녕 입찰자격도 없다. 게다가 사모펀드는 은행업을 본업으로 하는 투자자가 아니다. 3년 또는 5년 후에 다시 팔고나갈 사모펀드를 끌어다놓고 지역환원 운운하는 것은 지역주민을 기망하는 것에 다름없다.


BS금융지주(부산은행)와 JB금융지주(전북은행)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후에는 자해공갈로 비화됐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경남은행의 도 금고 계약을 해지했으며, 한국노총 경상남도본부는 조합원의 경남은행 통장을 해지토록 하는 등 투쟁에 나섰고, 결국 임기를 3개월 남긴 경남은행장이 전격 사임했다. 부산이 경남을, 전북이 광주를 접수하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는 식의 소지역주의가 상식의 한계를 넘었다.


마지막 관문은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이다. 분리매각을 위해 우리금융지주를 분할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세부담을 감면하자는 내용인데, 세수 감소의 상당 부분은 예금보험공사의 매각수입 상승으로 상쇄될 것이며, 무엇보다 조기 민영화에 따른 국민경제적 이익을 감안하면 크게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그런데도 지역 출신 국회의원들이 지역환원론을 앞세우며 법개정 저지에 나섰다. 개탄스럽다.


경남도민과 광주시민에게 고언을 드린다. 지역환원론에 속지 마시라. 소중한 지방은행을 망침으로써 지역경제에 막대한 부담을 줄 뿐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혹세무민하는 정치인들에게 엄중 경고하는 현명한 유권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김상조 |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