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제에 외양간이라도 확실히 고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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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조의 경제시평

차제에 외양간이라도 확실히 고치자

by eKHonomy 2013. 10. 15.

또 소를 잃었다. 저축은행에 깨지고, LIG건설에도 터졌는데, 동양그룹한테 또 된통 당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냐’고 힐난할지 모르겠으나, 우리에겐 아직 소가 적지 않으니, 이제라도 확실히 외양간을 고쳐야겠다. 우선 은행 금리 3% 시절에 7%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투자 권유는 대부분 사기임을 초등학교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 또한 투자자들의 피해를 구제하는 장치, 예컨대 증권집단소송 제도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턱도 없다. 금융감독체계 개편, 금산분리 규제 강화, 구조조정 절차 개선 등의 세 측면에서 외양간 기둥을 제대로 세워야 한다.


첫째, 이번 동양그룹 사태에서도 금융감독당국은 직무유기의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동양그룹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소문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고, 구조조정 압력을 피하기 위해 은행 여신을 회사채·기업어음(CP)으로 대체하는 꼼수를 부렸다는 것 또한 비밀이 아니었다. 그래서 금융당국도 뒤늦게나마 유가증권 관련 규제를 강화하기 시작했지만, 동양그룹의 로비 때문인지 그마저도 시행 시기를 늦추는 바람에 개인투자자들의 피해를 증폭시켰다.


 

동양그룹 사태 일지 (출처 :경향DB)

왜 이 모양인가. 간단하다. 금융감독의 목표는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감독하는 것과 금융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으로 대별할 수 있는데, 이 두 기능이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원인이다. 즉 금융회사 또는 채무기업의 부실이 금융시장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 때문에 금융소비자 보호를 뒷전으로 돌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동양그룹 사태는 그 전형적인 사례다. 해결책도 간명하다. 충돌하는 두 기능을 별개의 기구가 담당하도록 하는 것이다. 2008년 위기 이후 많은 선진국들이 이 방향으로 금융감독체계를 개편했고, 최근 한국도 금융감독원에서 금융소비자보호원을 분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문제는 분리된 두 기구가 여전히 금융위의 지시·감독을 받는다는 데 있다. 금융위 역시 금융감독과 금융정책이라는 두 개의 상충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관치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따라서 그 산하에 있는 금융소비자보호원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조직법을 손대야 하는 금융위 개편은 절대 불가하다는 정부·여당의 입장이 변하지 않는 한, 외양간 고치기는 어렵다. 정답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왜 오답을 고수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둘째, 동양증권 등의 금융계열사를 사금고화한 동양그룹 총수 일가의 도덕적 해이가 지탄의 대상이 되었고, 따라서 금산분리 강화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런데 산업자본의 은행 지배를 원천 금지하는 은산분리와는 달리, 제2금융권의 경우에는 소유 규제가 없기 때문에 사금고화의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선 훨씬 세심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우선, 개별 금융회사 단위로 계열사 등에 대한 신용공여 한도를 설정하고 있는 현행 규제 방식은 업권별 규제격차도 클 뿐만 아니라, 동양그룹 사례에서 보듯이 유가증권 거래로 가장해 규제를 벗어날 가능성도 크다. 따라서 그룹 전체를 단위로 모든 형태의 직간접적 자금 제공을 규제하는 체계로 개선해야 한다.


제2금융권 금산분리의 핵심은 대주주 적격성 심사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산업자본의 지배를 사전적으로 금지하기 어렵다면, 부적격한 산업자본이 금융회사를 지배하는 것을 사후적으로나마 차단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은행·저축은행에는 이미 이 제도가 도입되어 있으니, 제2금융권에도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 이번 정기국회의 최우선 입법과제가 바로 이것이다.


동양그룹 금융상품 민원 급증 (출처: 연합뉴스)


셋째, 동양그룹의 파장이 커진 요인 중 하나는 총수 일가의 경영권 욕심 때문에 구조조정의 타이밍을 놓쳤다는 데 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부실기업의 발생은 다반사다. 따라서 부실기업을 적기에 효과적으로 구조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경제의 활력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불행히도 한국은 여기에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파산법원과 시장기구의 발전이 미흡하기 때문에 채권은행 중심의 구조조정 절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인데, 채권은행의 도덕적 해이와 그 뒤에 숨은 감독당국의 관치로 인해 구조조정 계획안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부실 징후를 보이는 그룹이 더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아다닌다. 가계부채·정부부채 이전에 기업부채 문제부터 걱정해야 할 판이다. 채권단 중심의 구조조정 절차 중에서 유일하게 법제화돼 있는 것이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의한 워크아웃인데, 이 법이 올해 말로 일몰된다. 재입법이 불가피한데, 구조조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할 사항들이 많다. 나아가 아예 법적 근거도 없는 주채무계열 제도와 채권단 자율협약 방식에 최소한의 법적 안전장치를 갖추는 노력도 필요하다. 외양간을 고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많다. 쉽지 않지만 반드시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또 소 잃고 후회한다. 정기국회의 분발을 촉구한다.


김상조 |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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