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누진제 논란, 현실이 빠진 상상의 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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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세상/류동민 칼럼

[경제와 세상]누진제 논란, 현실이 빠진 상상의 전선

by eKHonomy 2016. 8. 18.

왠지 이번 올림픽은 적어도 텔레비전 바깥의 세상에서 그리 대단한 열광의 대상은 아닌 듯하다. 분명한 것은 “조국의 명예”를 걸고 싸우는 “태극전사”라는 표현이 어색함을 넘어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스코리아는 민간외교사절, 노동자는 수출역군이나 산업전사로 호명되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것과도 같은 이치다.

 

올림픽 중계화면을 보라. “우리”를 정의함에 있어 “핏줄”에 민감하기로는 세계 최고일 한국 대표팀에도 외국계 선수가 있고, 일본 럭비팀에는 남태평양 지역 출신의 귀화인이 무려 열 명 가까이 있다. 그러므로 “펠프스라는 나라가 있다면?”이라는 흥밋거리 기사는 본질에서 비켜나도 한참 비켜났다. 이미 펠프스라는 “기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놓고 프로선수들을 모아 시합을 치르는 월드컵 축구대회 못지않게 올림픽은 국가라는 허울을 씌워 놓은 자본의 각축장으로 바뀐 셈이다.

 

이미 식상할 정도로 인용된 말이지만 정치의 본질이 적과 동지를 가르는 데 있다면, 좁은 의미의 정치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가 끊임없이 실존하는 혹은 가상의 적을 만들어 다그침으로써 자신의 안녕을 보존하려는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빵이 없으면 브리오슈를 먹으렴” 따위의 먼 나라 야사를 떠올리며 괘씸한 마음이 드는 것이야 인지상정이되, 송로버섯이 메인 요리였는지 약간만 사용된 부재료였는지 따위의 논쟁은 마치 시바스 리갈이 비싼 술이었는지 아닌지의 논쟁처럼 부질없는 짓이다. 진정 중요한 것은 도대체 지금 이 땅에서 누구와 누구 사이에 편 가르기가 시도되고 있으며, 그 편 가르기는 물질적 기초를 갖는 것인지 혹은 자신의 안녕을 보존하기 위해 누군가가 만들어내는 상상의 전선인지를 생각해 보는 일이다.

 

그렇다면 경제적 관점에서 편 가르기의 경계선은 어디에서 그어지고 있는가?

전기요금 누진제 논란을 보면, 연전의 “연말정산 폭탄” 때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계산된 자료인지 모르겠으나, 연봉 5500만원이라는 수치를 콕 집어내 그 이상의 고소득자만 세금을 더 내는 것이라던 고위 관료의 발표를 기억한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몇 천 달러라는 나라에서 5500만원이란 요컨대 딱 평균 벌이를 하는 맞벌이 가계가 버는 소득이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비유하자면, 딱 반 평균점수 받는 학생을 우등생이라 치켜세우면서 평균 미만을 받는 학생들과의 사이에 전선을 만들어내는 꼴이다.

 

찬 공기를 만들기 위해 주위를 덥히는, 애초 그 존재 자체가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에어컨 때문에, 없는 사람에게는 추위보다 견딜 만하다던 더위도 이제는 계급적 문제가 됐다. 연말정산이 그나마 “고소득자”가 세금을 더 내고 덜 내고의 문제인 반면, 이 문제는 삶의 기본조건에 관한 것이다. 그렇다면 누진제 폐지가 상위 1퍼센트를 위한 감세와 같다는 정책당국자의 비유는 현실에 기초한 것일까? 어느 나라에서나 소득보다는 훨씬 불평등하게 분배돼 있기 마련인 재산 자료를 살펴보자.

 

최근 연구에 따르면, 당신이 상위 1퍼센트에 턱걸이하려면 약 10억원의 순자산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한국인들은 평균적으로 자산의 80퍼센트가량을 주거용 부동산으로 가지고 있다는 주먹구구를 이용하면, 요컨대 8억원짜리 아파트를 자가로 보유한 사람이다. 다시 한 번 서울시내 아파트 평균 가격이 평당 2000만원이라는 어림짐작을 적용하면, 40평짜리 아파트를 소유한 사람인 셈이다. 자, 그렇다면 전기요금 걱정에 에어컨을 켜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사람과 요금 걱정하지 않고 에어컨을 켤 수 있는 사람 사이의 전선은 1 대 99인가, 아니면 10 대 90, 혹은 그 이상인가?

 

오래전 시가 6억원짜리 집을 기준으로 매겨진 종부세 당시의 “세금폭탄” 전선을 기억해낸다면, 그 전선인즉 정치적 편의에 따라 고무줄 늘이듯 변화무쌍한 것임을 확인한다. 엄밀한 계산에 기초하지 않은 상상의 전선은 결국 이데올로기 공세에 지나지 않는다. 치밀한 음모를 가진 공세라면 당하는 입장에서 차라리 덜 허탈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영혼 없는 이들이 권력자의 눈치를 보며 우왕좌왕하는 중에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는 게임만 부추겨지는 것이라 생각하면 지루한 염천의 나날 속에서도 바짝 정신을 차려야 하는 것이다.

 

류동민 충남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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