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탄핵과 하야,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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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세상/류동민 칼럼

[경제와 세상]탄핵과 하야, 그 이후

by eKHonomy 2016. 10. 27.

밤새 잠 못 이루고 뒤척였다. 영락없이 풀방구리에 드나든다는 쥐 꼴이 되어 이리저리 들락거렸다. 도대체 이 판국에 경제칼럼을 어떻게 쓴다는 말인가? 제법 싸늘해진 새벽 공기를 가르며 버스를 기다리다 급해진 마음에 택시를 잡아탔건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크게 틀어놓은 라디오 뉴스에서는 “어처구니가 없다” “부끄럽다”는 장탄식만 터져 나온다. 얼마 전만 해도 세상에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듯 한가한 뉴스를 일삼던 바로 그 방송국이다. 진행자는 마지막 멘트에서 급기야 10·26과 부녀의 운명마저 언급한다. 공교롭다.

 

신돈에서 라스푸틴, 차지철에 이르기까지 온갖 요승과 실세의 호가호위가 망국으로 이어지는 역사 속의 유령들이 불려 나와 저잣거리를 떠돌아다닌다.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소극으로.” 카를 마르크스의 저 유명한 말을 몇 번이고 되새겼을 때, 나는 그 소극의 주인공인 나폴레옹 3세가 겪은 비극적 종말이 재현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어이없는 존재가 권력을 잡고 스스로 황제에 오름으로써 프랑스인들은 프러시아 군에게 봉쇄당한 파리에서 동물원의 코끼리와 쥐까지 잡아먹는 결사항전 끝의 처절한 굴복을 대가로 지불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황제는 이미 항복을 선언한 뒤의 일이었다. 바로 그 황제의 삼촌인 나폴레옹 1세가 엘바섬에서 탈출했을 때, 불과 몇 주 사이에 ‘탈출한 살인마’에서 시작해 ‘황제폐하 입성하시다’로 바뀌어 갔다는 당시 신문의 전설적인 헤드라인 얘기도 떠오른다. 그렇지만 살인마가 다시 황제폐하가 되고 그 황제가 또다시 몰락해도 그 헤드라인을 기획했던 세력은 꿋꿋이 살아남는다. 적어도 지금 여기에서는 그러할 것이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탄핵’, ‘하야’가 연 이틀째 올라 있다. 탄핵을 감행할 만큼 담대한 정치세력도 하야를 결단할 만한 주체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미 권력공백은 시작됐다. 떠나간 연인의 마음을 돌릴 수 없듯이, 사실상의 탄핵 혹은 하야는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침몰하는 배에서 먼저 뛰어내리려는 이들과 그 와중에 뭐라도 하나 챙기려는 이들, 심지어는 물색없이 침몰을 막아 보려는 이들까지 뒤섞여 온갖 암중모색이 처절하게 전개될 것이다.

 

핵심 지지층의 정치관을 강화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보수 종편이 연일 권력의 마지막 숨통을 끊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에서, 여전히 색깔론을 제기하며 ‘보수정치의 고난’을 절규하는 저명 논객의 글도 예사롭게 읽히지 않는다. 고작해야 한 세대 전처럼 폭력적 국가기구가 전면에 나서 권력을 장악할 리는 없다는 안도감 정도가 우리 사회가 축적한 민주주의 역량의 전부였을까?

 

헬조선이니 탈조선이니 하는 담론은 기회의 불평등, 절차적 공정성의 훼손, 능력주의가 더 이상 이데올로기로서조차도 제대로 작동할 수 없게 된 경제적 현실에서 나왔다.

 

더 없이 공고해 보이던 권력의 균열이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이화여대의 입학 및 성적 처리 과정에 대한 의혹으로부터 비롯됐다는 것은 시사적이다. 사실 최근 몇 년 새 대학생들이 성적에 집착하는 모습은 교수로서도 선뜻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도대체 A플러스와 A제로의 차이가 뭐라고 저토록 집요하단 말인가? 어리석은 내 물음에 후배 교수가 답한다. “형, 걔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그것밖에 없기 때문에 그러는 거야.”

 

권력자가 아무리 유언비어라 몰아세워도 현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노인 세대가 ‘묻지마 지지’를 보이는 동안에도 청년 세대의 낮은 지지율은 또 하나의 콘크리트였다. 소득주도성장이니 경제민주화니 혁신성장이니 하는 담론들은 이미 블랙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지금의 전선은 기껏 국가권력의 사유화로 말미암은 시스템 붕괴에 맞서는 수준 낮은 것이니, 다시 광장의 정치로 극복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 누구의 선의를 기대하거나 백마 탄 초인을 대망함으로써 사회가 진보한 적은 없었다. 바야흐로 1987년 이후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 내야 할 시점이다. 탄핵이나 하야가 아니라, 그 이후를, 다름 아닌 젊은 세대의 미래를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지금보다는 많아지도록 하기 위해, 두 눈 부릅뜨고 챙겨야 하는 것이다.

 

류동민 충남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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