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문의 대포를 실은 4척의 군함을 이끌고 1853년 7월 도쿄만(東京灣)에 도착한 매슈 페리(Matthew C. Perry) 미 해군제독은 이듬해 미·일 화친조약을 체결하여 일본을 개항시켰다. 수 천 년 동안 호리병 속에 들어있던 ‘지니(Ginie)’를 밖으로 꺼내 준 것이다.
그로부터 불과 50여년 후, 일본은 러일전쟁(1904∼1905)을 시작으로 이후 만주사변(1931), 중일전쟁(1937∼1945), 태평양전쟁(1941∼1945)을 차례로 일으키며 대만과 조선, 만주와 중국은 물론 인도차이나 반도의 베트남, 태국, 버마를 거쳐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뉴기니 및 솔로몬 군도에 이르는,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그리고 호주 이북에서 미드웨이 섬 서쪽의 태평양을 포괄하는 그야말로 광대한 영역을 단숨에 석권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자국민 300만명을 포함하여 아시아인들과 미국 군인까지 약 30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중국에서만 1500만명이 죽었다고 한다. MIT 대학 역사학과 명예교수인 존 다우어(John W. Dower)의 퓰리처상 수상작 <Embracing Defeat(번역본: 패배를 껴안으며)>의 표현을 빌리자면, 페리 제독이 풀어놓은 지니는 호리병 밖으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피에 젖은 괴물(blood-soaked monster)”로 둔갑했던 것이다.
여기에 대해 일본은 현재까지도 이렇다 할 반성의 마음을 내비치지 않은 채, 오로지 십 수만 명의 원폭 피해자만 줄기차게 강조해 오고 있다. 수많은 아시아인들의 눈에 일장기 동그라미의 붉은 색이 떠오르는 태양의 빛깔이 아니라 한 방울 선혈(鮮血)의 색깔로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1945년 미국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려 그 괴물의 머리에 뇌진탕을 입히고는 괴물을 다시 호리병 속에 집어넣었다. 곧이어 도쿄에 진주한 맥아더 사령부는 일본으로 하여금 영원히 군대를 갖지 못하게 하는 평화헌법(1946년)을 제정함으로써 호리병 속의 괴물이 다시는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봉인(封印)을 해 두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꼭 70년이 흘렀다.
지난 7월10일 일본에서는 참의원 선거가 있었다. 이 선거에서 연립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은 승리를 거두어, 평화헌법 개정에 찬성하는 참의원들의 숫자가 163석으로 늘어났다. 이로써 일본 총리 아베 신조(安倍晋三)는 참의원 개헌발의 정족수(242석의 3분의 2 이상)를 확보하는 데에 성공했다. 작년에 치른 중의원 선거에서도 중의원 개헌발의 정족수를 이미 확보해두었기 때문에, 이제부터 아베 총리는 70년 전 맥아더 사령관이 써 준 평화헌법을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고칠 수 있게 되었다. 호리병 속에 갇혔던 지니가 미국의 묵인하에 봉인을 뚫고 밖으로 뛰쳐나올 준비를 마친 셈이다.
언제일지 모르나, 일본이 만약 헌법을 개정하여 군대를 보유하고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된다면, 그런 일본은 아라비안나이트에서처럼 미국이나 아시아인들에게 소원 세 가지를 들어주는 착한 지니가 될 것인가, 아니면 지난번처럼 병에서 꺼내준 은인을 배반하고 피를 뒤집어쓴 괴물로 돌변할 것인가? 현재로써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일본사람 본인들도 잘 모를 것이다. 어떻게 될지는 오직 시간만이 말해줄 수 있을 뿐이다.
일본만이 아니다. 중국도 칼날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르던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중국이 더 이상 아니다. 우리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크게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 틈바구니에서 우리 같은 작은 나라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자강(自强)을 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정답은 간단하다. 쓸데없는 데에 인적, 물적, 지적 자원과 정서적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부터 하지 말아야 한다. 옛말에도 “하지 않는 일이 있은 후에라야 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필요도 없는 대규모 재정사업을 일으켰고, 멀쩡한 청사를 허물고 막대한 빚으로 으리으리한 건물을 경쟁적으로 지었으며, 선심성 쪽지예산을 매년 수십억, 수백억원씩 예산에 집어넣었다.
이뿐만 아니라, 군수품 납품비리와 지도층 비리·부패 사건 등등이 끊이지 않았지만, 아직 나라가 위태로워지는 데에 이르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괜찮았던 태평성대는 이제 저물어가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박종규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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