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부의 각종 정책 보도자료가 홍수를 이룬다. 각 부처의 2014년 업무계획, 개인정보 유출 사태 대책,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등 굵직굵직한 정책들이 줄을 이었다. 따라가기도 버거울 정도다. 관료에 대한 경계심이 강했던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에 비하면, 박근혜 대통령은 관료들이 과로사할 정도로 적극 활용하는 듯하다. 좋다 나쁘다를 논하기 이전에, 하여튼 독특하다. 문제는, 박 대통령이 각 정책의 효과와 부작용, 그 이면의 의도 등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확신하기 어렵다.
3월6일 발표된 ‘M&A 활성화 대책’에 주목하고 싶다. 강조하건대, 나는 이 대책의 취지에 적극 공감한다. 부실기업의 원활한 구조조정과 중소·벤처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M&A가 활성화되어야 하며, 따라서 M&A의 핵심 주체인 사모펀드(PEF)에 대한 규제가 완화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PEF를 신자유주의의 첨병쯤으로 보는 진보진영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나의 이런 주장에 갸우뚱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업계 분들에 대한 실례를 무릅쓰고 거칠게 비유하자면, 사모펀드 시장은 정체가 모호한 사람이 깔아 놓은 판에 이른바 선수들이 모여 도박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당연히 부작용이 있다. 개중에는 사기꾼도 섞여 있기 마련이고, 집문서 날리고 패가망신하는 사람도 생긴다. 그런 부작용이 염려되어 규제를 너무 강하게 걸면, 잭팟을 터트리는 사람도 나오지 않는다. 은행 중심의 보수적인 금융 환경에서는 부실기업 인수나 중소·벤처기업 투자처럼 실패 확률이 높은 사업에 도전하는 모험자본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결국 선악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책적 판단의 문제다. 2008년 위기 및 2012년 대선 이후의 국내외 경제환경 변화에 따라 경제력 집중 심화·금산분리 원칙 훼손 등과 같은 부작용 우려는 줄어든 반면, 침체된 한국경제의 활력을 되살릴 필요성은 커졌다는 점에서 M&A 내지 PEF에 대한 규제체계를 재정비할 시점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의 은행주식 보유 승인요건 및 사모펀드(PEF)의 은행주식 보유에 대한 승인요건.(출처 :경향DB)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보도자료에 써놓은 것처럼 관련 규제를 사실상 폐지하는 수준으로까지 막가자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정부는 금융전업그룹이나 전업계 PEF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상 의결권 제한과 자본시장법상 5년 내 매각 의무를 ‘배제’할 방침임을 밝혔지만, 이건 너무 나갔다. PEF는 부실기업을 인수하여 구조조정한 후 되파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한시적 투자기구다. 따라서 인수기업에 대한 의결권 행사는 당연히 허용해야겠지만, 어디까지나 한시적이어야 하고, 일정 시한 내에 매각하도록 해야 한다. 관련 규제를 영구히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조정 목적에 필요한 충분한 기간 동안, 이를테면 10년간 ‘유예’하는 것으로 족하다. 지주회사 규제도 PEF에 대해서는 10년간 유예하고 있지 않은가.
내가 보다 우려하는 것은 M&A 활성화 대책이 부실기업을 구제하는 수단으로 오남용될 가능성이다. 보도자료를 보면, 통합도산법과 기업구조조정촉진법상의 구조조정 절차에 적용되는 조세·금융 특례를 채권단 자율협약의 경우에도 확대적용하겠다는 내용이 여러 군데 나온다. 뭐가 다르냐고? 채권단 자율협약에 의한 구조조정 절차에는 투명성·책임성을 확보할 최소한의 법적 장치도 없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도 모른다. 자율의 탈을 쓴 관치의 수단이라고 보면 된다. 정책금융기관·연기금 등이 민간 PEF를 지원한다는 보도자료 대목에 이르면 의심이 확신이 된다.
건설사·해운사를 비롯해서 중견그룹에 이르기까지 부실(징후)기업의 압력이 한국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신속한 구조조정이 필요하고, 따라서 M&A 활성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대다수 부실기업의 주채권은행 역할을 하는 산업은행이 총대를 메고 나서고 그 뒤에서 감독당국이 민간 금융회사의 팔을 비트는 방식의 구조조정은 부실을 은폐·확대할 뿐이다. 특혜와 비리 시비도 빠지지 않으니, 정권 교체 즉시 청문회감이다. 감히 박 대통령께 고언을 드린다. 관료를 활용하시되, 믿지는 마시라. 큰일 난다. 부실기업 구조조정 문제, 다시 한 번 체크하시기 바란다.
김상조 |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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