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투자분쟁 사건의 심리가 진행되면서 관련 소식이 연일 언론에 소개되고 있다. 그런데 언론들은 예외 없이 이 사건을 “소송”이라고 부른다. 심지어 외교부는 “재판”이라고까지 한다. 기본 개념조차 모르는 엉터리 번역이다. ISDS의 본질을 놓치는 오류이거나 의도적인 감추기다.
ISDS의 정식 명칭은 “투자자 국가 분쟁 해결(Investor State Dispute Settlement)”이고 약어는 ISD가 아니라 ISDS다(ISD란 표기도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ISDS에 따른 투자자와 국가 간의 분쟁은 소송 절차가 아니라 중재 절차로 해결한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중재”란 “제3자가 분쟁 당사자 사이에 끼어들어 분쟁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ISDS는 사적 분쟁 해결 방식이고, 소송을 통한 분쟁 해결은 일종의 공적기구(법원)를 통한 해결이란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중재는 법원과 달리 민간인이 결론을 내며, 중재인을 분쟁 당사자들이 정한다. 3명의 중재인 중 2명은 중재 청구인과 피청구인이 각각 선정하고, 나머지 수석 중재인은 당사자가 합의로 정하거나 합의가 되지 않으면 중재기관에서 정한다. 그리고 중재인은 어떤 사건에서는 중재판정을 하기도 하고 다른 사건에서는 투자자를 대리하는 변호사 역할도 한다. 론스타 사건에서 우리 정부가 정한 중재인은 프랑스 국적의 대학 교수(브리짓 스턴)이고 론스타 측 중재인은 미국 국적의 변호사(찰스 브라우어)이며, 양측이 수석 중재인으로 합의하는 사람은 영국 국적의 변호사(조니 비더)다.
소송에서 재판부를 구성하는 판사 한 명을 원고가 정하고, 다른 판사는 피고가 정한다면, 그것도 다른 사건에서 원고 변호사였던 자가 재판부를 구성한다면, 그 재판부가 공정한 판결을 하리라고 누가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사법부는 국민이 위임한 일종의 주권위임 형식의 권력을 갖지만, 중재판정부는 이런 권력도 없고 공정하고 독립적인 판단을 위한 신분보장도 되지 않는다. 중재는 원래 상인들이 서로 간의 분쟁을 자기들끼리 해결하려고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프랑스 상인과 독일 상인이 영국에서 장사를 하다가 분쟁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할까? 법원을 통한 분쟁 해결은 비용도 많이 들고 3심이라 시간도 오래 걸리니 자기들이 정한 사적 기구를 통한 분쟁 해결 즉, 상인법이 ISDS의 뿌리다. 이처럼 상인 개인들 간의 분쟁을 사법제도 바깥에서 중재하는 상인법 체제를 국제법 영역으로 끌어들인 것이 ISDS이고, 중재 결정에 강제력을 부여하는 것이 국가 간 투자협정(BIT)이나 자유무역협정(FTA)이다.
또 하나, 중재는 사적분쟁해결 방식이므로 당사자가 미리 동의한 경우에만 분쟁제기가 가능하다. 그러나 소송은 다르다. 원고가 소장을 내기 전에 피고에게 법정에서 문제를 해결하자고 미리 동의를 받아야 한다면 말이 되겠나? 피고의 동의가 없다고 법원에서 소장을 반려하면? 위헌이다. 재판받을 권리는 헌법에서 보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재에는 이런 게 없다. 문제는 BIT나 FTA에서 사전동의가 없어도 투자자는 국가를 분쟁에 끌고 갈 수 있도록 해놓았다는 점이다. 초기의 ISDS는 투자자와 투자유치국 사이에 발생하는 분쟁은 국내법에 따라 해결하고, “서로 원한다면” 사적분쟁해결 즉, 중재로 해결하는 것이었다.
금융정의연대와 참여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국제통상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3일 오전 서울 태평로 금융위원회 민원실에 외환은행의 론스타 주가조작 손해배상금 지급 관련 금융위 조사요청서를 제출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국가의 사전 동의권을 박탈한 최초의 FTA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고 론스타 투자분쟁의 근거인 한·벨기에 투자보장협정도 NAFTA 방식을 따른다. ISDS를 투자자-국가소송제로 번역하면, 이러한 ISDS의 문제점이 모두 사라지고 만다. 왜 우리나라 정부의 행정행위를 프랑스, 미국, 영국의 민간인 3명이 재단하는가? 이런 사적분쟁해결 절차에 우리나라 고위 공무원들이 줄줄이 참여하는 상황, 그것도 국민세금으로 출장비까지 받아가면서 미국행 비행기를 타는 상황이 터무니없는 혈세 낭비란 점도 드러나지 않는다.
남희섭 | 오픈넷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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