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반도를 강타한 강추위를 피해 간사이 지방을 주유하고 돌아왔다. 시한이 다해가는 엔저의 호기에 부가해 저가항공과 전철패스를 활용한 여행인지라 가격 대비 효과(value for money)는 탁월했다. 단지 정비 소홀로 연착한 항공기와 급행전철의 과도한 소음이 안전하고 안락한 여행을 방해한 것이 옥에 티였다.
이번 여행은 우리의 동남지방 부산·울산·경주를 연상시키는 오사카·고베·교토에 주력했다. 간사이와 동남지방은 자연지리는 유사하지만 연계관광을 촉진하는 대중교통망을 비롯해 인문지리는 차이가 확연했다. 우리의 전철망 확충이 수도권에 집중되는 동안 부산~울산~경주는 네 칸짜리 디젤열차가 하루 10여차례 왕복하는 동해남부선에 머물러 있다.일본의 지방자치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과도한 중앙집권의 그림자라는 경로 의존에도 불구하고 특색있는 지역발전을 추구해왔다.
마을만들기와 도시재생에 초점을 둔 내생적 발전전략은 6차산업과 지역공동체의 활성화로 나타났다. 일례로 고베를 대표하는 명품 소고기, 개항장 건물, 온천마을, 산악 케이블카 등은 지역경제 활성화의 핵심적 동인이다.
오사카 도심 난바에서 전철패스로 접근이 가능한 고야산은 100여개의 사찰과 수만기의 납골묘를 품고 있었다. 불교 종파, 미망인협회, 해군 항공대 등 다양한 이들이 설립한 사찰들은 템플스테이를 제공하고 있었으며, 순례길에 도열한 가문 납골당과 회사 위령비들은 일본 특유의 공동체 문화를 실감하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근대화의 여정에서 ‘하얀 가면’에 몰입한 일본의 행태를 꼬집었지만 실상 전통과 문화를 상실한 민족은 누구인가를 자문하게 된다.
일본의 정체성에 기반한 역사 마케팅의 경쟁력은 교토 일원에 산재한 유적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메이지유신으로 몰락한 봉건 영주의 거점이었던 니조성, 전통과 현대가 결부된 도시공간의 매력을 발산하는 기온, 일본산 목재 삼나무와 히노끼의 장점을 극대화시킨 건축물인 청수사, 천년고도 교토의 추억을 회상하는 헤이안신궁 등이 국내외 관광객들을 유인하고 있다.
우리의 경주가 지지부진한 월성과 황룡사를 재건하거나 역사와 현대의 대화를 촉진한다면 교토를 넘어서지 않을까 하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곳이었다.
자유여행을 통해 체험한 일본의 의식주도 독특했다. 우선 숙소에서 적응하기 어려웠던 온풍기 난방은 온돌의 경쟁력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오랜 경기침체를 거치며 단품형 밥집과 도시락 구매가 대세로 부상한 일본의 외식문화는 간소하지만 정갈했다. 그리고 소득에 비해 화려하지 않은 외양이나 비굴할 정도로 친절한 점원들의 태도도 인상적이었다. 더불어 일본 노벨상의 산실로 알려진 교토대의 소박한 외관도 ‘국화와 칼’로 대표되는 그들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한편 지방을 넘어서는 우리의 국가발전전략은 자의 반 타의 반 일본의 그것과 유사하다. 식민통치의 유산은 물론 국제분업의 잔재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1930년대 중반 시작된 일본식 발전국가는 정계와 재계의 반대로 기획원의 신설이 지연될 정도로 시민사회와 시장의 기반하에서 진화했다. 여기에 더해 전후 일본에 진주한 미군정은 제국주의의 첨병인 정부관료제와 재벌의 약화를 의도하기도 했다.
반면 기존 제도의 견제가 전무한 상태에서 출범한 한국식 발전국가는 1963년 동반 태동한 경제기획원과 전경련이 ‘성장연합’을 결성해 독주하는 방식이었다. 경제와 안보의 후원자로서 미국의 개입도 내부적 특수성보다는 외부적 방향성에 주력했다.
결과적으로 중앙 기획, 수출 지향, 재벌 편향 등을 요체로 하는 한국식 발전국가는 제3세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산업화와 민주화의 병행 발전이라는 성과를 창출했지만 경제·사회 전반에 깊고 넓은 불균형 발전의 후유증을 초래했다. 결자해지 차원에서 경제민주화를 위해 정부와 재벌의 자성과 분발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김정렬 | 대구대 도시행정학과 교수
이번 여행은 우리의 동남지방 부산·울산·경주를 연상시키는 오사카·고베·교토에 주력했다. 간사이와 동남지방은 자연지리는 유사하지만 연계관광을 촉진하는 대중교통망을 비롯해 인문지리는 차이가 확연했다. 우리의 전철망 확충이 수도권에 집중되는 동안 부산~울산~경주는 네 칸짜리 디젤열차가 하루 10여차례 왕복하는 동해남부선에 머물러 있다.일본의 지방자치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과도한 중앙집권의 그림자라는 경로 의존에도 불구하고 특색있는 지역발전을 추구해왔다.
마을만들기와 도시재생에 초점을 둔 내생적 발전전략은 6차산업과 지역공동체의 활성화로 나타났다. 일례로 고베를 대표하는 명품 소고기, 개항장 건물, 온천마을, 산악 케이블카 등은 지역경제 활성화의 핵심적 동인이다.
오사카 도심 난바에서 전철패스로 접근이 가능한 고야산은 100여개의 사찰과 수만기의 납골묘를 품고 있었다. 불교 종파, 미망인협회, 해군 항공대 등 다양한 이들이 설립한 사찰들은 템플스테이를 제공하고 있었으며, 순례길에 도열한 가문 납골당과 회사 위령비들은 일본 특유의 공동체 문화를 실감하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근대화의 여정에서 ‘하얀 가면’에 몰입한 일본의 행태를 꼬집었지만 실상 전통과 문화를 상실한 민족은 누구인가를 자문하게 된다.
일본의 정체성에 기반한 역사 마케팅의 경쟁력은 교토 일원에 산재한 유적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메이지유신으로 몰락한 봉건 영주의 거점이었던 니조성, 전통과 현대가 결부된 도시공간의 매력을 발산하는 기온, 일본산 목재 삼나무와 히노끼의 장점을 극대화시킨 건축물인 청수사, 천년고도 교토의 추억을 회상하는 헤이안신궁 등이 국내외 관광객들을 유인하고 있다.
우리의 경주가 지지부진한 월성과 황룡사를 재건하거나 역사와 현대의 대화를 촉진한다면 교토를 넘어서지 않을까 하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곳이었다.
자유여행을 통해 체험한 일본의 의식주도 독특했다. 우선 숙소에서 적응하기 어려웠던 온풍기 난방은 온돌의 경쟁력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오랜 경기침체를 거치며 단품형 밥집과 도시락 구매가 대세로 부상한 일본의 외식문화는 간소하지만 정갈했다. 그리고 소득에 비해 화려하지 않은 외양이나 비굴할 정도로 친절한 점원들의 태도도 인상적이었다. 더불어 일본 노벨상의 산실로 알려진 교토대의 소박한 외관도 ‘국화와 칼’로 대표되는 그들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한편 지방을 넘어서는 우리의 국가발전전략은 자의 반 타의 반 일본의 그것과 유사하다. 식민통치의 유산은 물론 국제분업의 잔재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1930년대 중반 시작된 일본식 발전국가는 정계와 재계의 반대로 기획원의 신설이 지연될 정도로 시민사회와 시장의 기반하에서 진화했다. 여기에 더해 전후 일본에 진주한 미군정은 제국주의의 첨병인 정부관료제와 재벌의 약화를 의도하기도 했다.
반면 기존 제도의 견제가 전무한 상태에서 출범한 한국식 발전국가는 1963년 동반 태동한 경제기획원과 전경련이 ‘성장연합’을 결성해 독주하는 방식이었다. 경제와 안보의 후원자로서 미국의 개입도 내부적 특수성보다는 외부적 방향성에 주력했다.
결과적으로 중앙 기획, 수출 지향, 재벌 편향 등을 요체로 하는 한국식 발전국가는 제3세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산업화와 민주화의 병행 발전이라는 성과를 창출했지만 경제·사회 전반에 깊고 넓은 불균형 발전의 후유증을 초래했다. 결자해지 차원에서 경제민주화를 위해 정부와 재벌의 자성과 분발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김정렬 | 대구대 도시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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