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12월3일자 경향신문에 게재한 원샷법 반대 칼럼에 대해 12월9일자로 권종호 교수가 반론을 제기했다. 반론을 환영한다. 칼럼에 대한 반론과 재반론을 통해 사안의 핵심에 근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필자는 권 교수의 주장에 거의 동의하지 않는다.
우선 권 교수는 원샷법이 제정되면 “과점 상태에 있는 대기업보다는 극심한 경쟁에 시달리는 중소·중견기업이 주된 수혜자가 될 것”이라면서 “원샷법을 재벌과 연관시켜 보는 시각”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정말로 재벌이 아니라 중소·중견기업이 원샷법의 수혜자가 된다면 필자가 반대할 이유가 없다. 아마 야당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권 교수의 진단대로라면 재벌을 배제하는 선에서 여야가 합의하고 통과시키면 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재벌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0%가 넘고, 구조조정이 시급한 조선업 등을 재벌이 하기 때문에 재벌을 빼면 안된다고 한다. 법안에도 재벌과 관련이 깊은 공정거래법 예외조항이 들어 있다. 즉, 권 교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이미 이 법을 재벌관련법으로 인식하고 있고, 법안에도 그런 내용이 있다.
다음으로 권 교수는 재벌의 부당한 경영권 승계에 악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4중의 안전장치를 두었다고 강조했다. 민관합동 심의위원회가 열심히 심사하고 문제가 생기면 엄중히 처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장치가 경영권 승계와 같은 “큰 사건” 앞에서는 무용지물일 것이라고 단언한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상기해 보자. 합병비율이 불공정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의결권 행사에 관한 국제적 자문기구인 ISS는 물론이고,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자문기관인 서스틴베스트와 한국기업지배구조원도 합병 반대를 권고했다. 그런데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합병을 찬성했다. 그리고 수천억원의 주가하락 손실을 경험했다. 이런 것을 막는 장치가 없어서 그랬는가. 아니다.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도 만들었고, 수급권자 이익을 강조하는 의결권 행사 기준도 있었다. 문제는 이런 안전장치가 ‘삼성의 경영권 승계’ 앞에서는 먹통이었다는 것이다. 현실이 이럴진대 서류상으로 존재하는 4중의 안전장치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보다 주주총회를 열라는 것이 더 유효한 안전장치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후 삼성그룹 지배구조 변화 _경향DB
이런 의미에서 필자는 주주총회를 약화시키는 조항에 반대한다. 이사회 결의만 필요한 소규모 합병, 주주총회 소집공고 기간 단축, 주식매수청구권 보호 약화 등이 대표적 독소 조항이다. 우선 소규모 합병은 표현이 그럴 뿐이지 실제로는 ‘대규모 합병’이 될 수 있다.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이 대략 200조원이므로 원샷법처럼 기준을 10%에서 20%로 완화하면 40조원짜리 기업과의 합병도 ‘소규모 합병’으로 처리할 수 있다. 재벌의 공식 명칭인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기준 금액이 5조원인데 그 8배인 40조원짜리 기업을 ‘소규모 합병’이라고 이름 붙여 주주총회 없이 넘어가자는 것이다.
주주총회 소집공고 기간은 현행 2주도 짧다고 원성이 자자하다. 이를 7일로 단축하고 금요일에 소집공고를 내면 실제로 국내외의 주주들이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기간은 4일 남짓하다.
주식매수청구권 보호 약화 역시 외국과 평면 비교할 문제가 아니다. 외국은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견제장치가 잘 발달해 있지만, 우리나라는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상법 개정안이 대통령의 선거 공약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법사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중소·중견기업들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많은 애로사항을 겪는다. 사장이 회사채무의 연대보증을 섰기 때문에 섣불리 구조조정 절차를 신청하기 어렵다는 점, 공단 부지를 활용하여 자금을 융통하기 어렵다는 점, 구조조정 과정에서 취득세 등 세금부담이 상당하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권 교수가 예로 든 좀비기업이나 산업은행이 관리 중인 118개 회사를 적절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주주총회를 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애로사항을 해결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전성인 |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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