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역대 최고인 Aa2로 상향 조정했다. Aa2는 전체 21개 등급 중 세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 피치 등도 한국을 상위 4번째 등급에 포함시키고 있다. 신용등급 상승은 국가 이미지 개선과 함께 해외에서 돈을 빌릴 때 우대금리를 적용받는 등 실질 효과도 있다. 미국 금리 인상 여파로 신흥국의 자본유출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한국은 다르다는 것을 각인시켰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다.
하지만 분명히 해둘 게 있다. 신용등급 상승이 한국의 경제 상황이 좋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디스가 한국 신용등급을 올린 것은 재정 사정 등을 상대적으로 좋게 봤기 때문이다. 외환보유액이나 단기외채 비율은 과거에 비해 양호해졌다. 국가채무 비율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40%선으로 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수치가 전부는 아니다. 건강보험 등이 포함된 통합재정수지는 흑자지만 관리재정수지는 적자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나랏빚도 이명박 정부 이후 배 이상이 늘어나는 등 증가속도가 가파르다. 일본이 야금야금 나랏돈을 쓰다 최악의 재정적자국이 된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나랏빚보다 훨씬 많은 가계빚을 동원한 경기활성화 정책의 후폭풍은 이제 시작이다. 한국의 가계빚은 GDP 대비 84%로 18개 신흥국 중 가장 높다. 금리 인상이 본격화되면 저소득 가계부터 타격을 입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기업부채도 GDP 대비 150% 수준으로 높다. 여기에 수출은 줄고, 내수는 풀릴 기미가 없다. 투자와 고용도 얼어붙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제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Aa2로 상향조정한 것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_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신용등급이 위기 때 안전을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다. 외환위기 직전 무디스 등은 한국에 Aa3등급을 매겼지만 외자유출 때 전혀 방어막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얘기다. 이를 감안하면 이번 신용등급 상승을 최경환 부총리가 말한 것처럼 ‘박근혜 정부의 3년 성과’ 운운하며 으스대는 모습은 낯간지럽다. 노동·경제관련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국가 신용도에 큰 차질을 빚고 금방이라도 위기가 닥칠 듯 과장하는 것은 더욱 꼴사납다. 한국 경제는 이미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하는 상황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경제 체질을 바꾸는 노력이다. 이는 그저 기업만을 위한 규제 완화나 경기부양 같은 과거 접근법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단기 성과에 급급해하지 말고 냉정하게 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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