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등급, 공적관리체제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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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제윤경의 안티재테크

신용등급, 공적관리체제로 가자

by eKHonomy 2012. 8. 8.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일의 선행단계는 상식과 비상식을 구분하는 것이다. 비상식적인 일은 하지 못하도록 하고, 그런 일을 하면 준엄하게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나는 ‘상식파’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최근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한 발언이다. 그의 말은 지금의 현실을 적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라는 거창한 잣대로 평가하기에는 너무 저급한 일들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최근 금융권에 대한 공정위 조사와 감사원 감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바로 비상식의 전형을 보는 듯하다. 시중은행의 학력차별은 그중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성별에 의해, 인종에 의해, 직업에 의해 과학적인 근거도 없이 차별적으로 신용등급이 산정돼 있을지 알 수 없다. 신용등급이 같은데도 불구하고 개인별로 주어지는 대출 한도는 다르다. 가령 의사, 변호사의 경우 우수 등급 소유자는 한때 신용 대출이 최고 5억원까지 주어진 적도 있다. 반면 자영업자의 경우 우수 등급임에도 대출 한도는 거의 발생하지 않거나 소액만이 허용됐다. 물론 소득수준이 대출 한도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상담 현장에서는 의사 자격증만 소유한 채 병역의무를 이행하고 있는 군의관이 당장 돈을 벌고 있는 자영업자보다 더 많은 대출을 받은 것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신용공급이 장래의 기대소득, 즉 의사는 돈을 많이 벌 것이란 사회 통념에 의해 결정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신한은행 서울 태평로 본점으로 직원들이 들어가고 있다. (출처 :경향DB)


이런 일련의 과정으로 볼 때 신용등급은 무엇 때문에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어차피 직업과 학력, 심지어 인종 같은 엘리트 기득권층과 사회적 약자를 구분하는 잣대들에 의해 대출 한도가 결정된다면 신용등급은 처음부터 필요 없었던 것이 아닐까. 


이번 감사원 감사 결과 은행들이 신용등급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명백히 드러났다. 그것은 바로 금융 소비자들의 부정적인 신용정보들을 실시간 감시함으로써 과도하게 가산금리를 챙기는 명분으로 이용한 것이다. 약간의 부주의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소액 단기연체까지도 신용등급에 반영하고 그를 통해 가산금리를 더 챙겼다고 한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가령 카드사들은 고객들에게 ‘당신의 신용등급이 우수해 낮은 금리로 대출을 해주겠다’는 마케팅을 벌인다. 당장 돈이 필요하건 필요치 않건 상대적으로 낮은 이자로 쉽게 대출받을 수 있다고 하니 많은 소비자들이 만약을 대비해 카드 대출을 받기도 했다. 이것이 카드론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카드론을 일으키자마자 신용등급에 변동이 생긴다. 제2금융권 대출을 이용하는 것을 신용상의 이상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결국 신용등급이 좋아 저금리 카드 대출을 받아 그로 인해 다시 신용등급이 떨어지고 처음의 저금리는 가산금리가 붙어 미끼역할만 하고 끝이 난다. 바로 이것이 비상식의 전형이다. 대낮에 코베가는 식의 영업이 신용을 기반으로 작동해야 할 금융권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일들이 가능한 이유는 근원적으로 신용등급 체계가 공적으로 관리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은행을 비롯한 금융권과 신용평가 회사들에 의해 소비자들의 신용정보가 독점되고 등급 산정의 근거와 평가 결과에 대한 사유가 소비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지 않다. 신용 소비자들이 자신의 신용등급 산정 과정에 참여할 기회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다. 이의제기조차 할 수 없는 신용등급이 베일에 싸여 금융권의 사람을 평가하는 삐뚤어진 잣대까지 고스란히 반영되어 운영된다니 황당할 뿐이다.


신용등급 관리 체계부터 바꿔야 한다. 국가에 의한 공적 관리는 물론이고 소비자의 참여, 혹은 신용등급 결과에 대한 투명한 정보 공개가 이뤄져야 한다. 또한 부정적인 정보를 이용한 신용등급 떨어뜨리기 수단이 아닌 긍정적 요소를 중심으로 소비자들이 신용관리를 하고자 하는 동기를 향상시키는 것으로 개선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금융이 합법적 사기를 통해 소비자들의 주머니를 약탈하고 있다는 생각을 버리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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