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소비자, 이젠 까칠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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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제윤경의 안티재테크

금융 소비자, 이젠 까칠해져야 한다

by eKHonomy 2012. 8. 16.

제윤경 | 에듀머니 이사


한국 소비자들은 유독 금융에 대해서만은 관대하다. 학력이라는 차별적 요소로 신용등급을 평가해도 여전히 ‘돈을 빌려주는 입장’에서 불가피하다는 논리에 설득당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금융권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항변 또한 지나치게 당당하다. 공짜로 영업할 수 없지 않으냐고 한다. 그러나 그런 당당한 논리 어디에도 학력이 부채 상환능력을 결정할 수 있는 준거로서 의미가 있다는 객관적 증거는 없다.


신용등급을 나누는 것 자체를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등급 산정 기준에 부채 상환 능력과 무관할 수 있는 차별적 요소가 있음을 지적하는 것을 모르는 것인지 외면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일부 시민단체에서 금리 담합 의혹과 황당한 신용등급 산정으로 가산금리를 부당하게 챙겨온 금융권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여전히 소비자들은 지나치게 차분하다. 


소비자들의 금융에 대한 관대함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고리대금업을 활성화시키는 데 일조한다. 선진국들은 일반적으로 연 20% 이상의 이자를 고리로 규정하고 사회적 정의에 반하는 것이란 전제로 이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카드사들이 30% 가까운 이자가 붙어 있는 상품을 합법적이고 일상적으로 판매한다.  그 결과 리볼빙 이용자가 290만명, 2개 이상의 카드로 현금서비스와 카드론을 이용하는 저신용자는 각각 91만4000명, 61만6000명에 달한다. 금융사들은 이들에게 20~30%의 고금리 장사를 하고 있다.


현금서비스와 마찬가지로 리볼빙 서비스나 카드론의 경우 중산층조차 갑작스러운 목돈 지출 사건이 발생하면 쉽게 이용하는 경우를 접한다. 일반적인 신용대출을 이용하자니 시간이 걸리고 절차가 까다로운 반면 카드론이나 리볼빙은 쉽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어떤 측면에서는 급전 마련이 편리한 제도로 이해되기도 하는데 사실상 대출이 쉬운 것은 소비자들에게 부정적인 측면으로 작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우선 급전을 대비한 비상금을 유지해야 한다는 동기를 없앤다. 


과거에는 신용 사용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대개의 가정에서 만약을 대비한 비상금을 일정 수준 이상 유지했다. 혹은 미래 목돈 지출이 필요한 재무사건을 예측해 그에 맞춰 저축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언제든 급하면 카드론이나 리볼빙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목돈 형성에 대한 목적의식이 대단히 낮은 수준이다. 혹은 돈이 급해보이지만 경우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음에도 우선 빚으로 쉽게 해결해 버리는 오류를 발생시킨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어떤 상담자는 회사 사정으로 월급이 한두 달 밀리는 경험을 했다. 당시 여러 장의 카드로 소비 결제부터 현금서비스 등 가용 신용을 전부 끌어썼다. 비상금이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재무분석을 해보니 긴축재정만으로도 현금서비스는 사용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갑 속에 꽂혀 있는 편리한 신용카드는 다음달이면 정상적으로 들어올 월급에 대한 강한 기대심으로 긴축재정 대신 현금서비스 이용을 선택하게 한다.


경기 성남시 수정구 신흥동 토마토저축은행 본점에서 예금자들이 항의하고 있다. (출처: 경향DB)


신용 사용이 편리하다는 것은 이점이라기보다는 위험이 증가할 가능성을 높이는 환경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동안 금융권은 마치 소비자들을 위해 신용 사용의 편리성을 제공함으로써 소비자의 금융생활에 보탬이 되는 것인 양 행세해왔다. 그리고는 다른 선진국에서 불법으로 규정하는 수준의 고금리 영업을 하고 있다. 특히 가계부채의 심각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최근에도 카드사들은 고금리 영업에 더 열을 올리고 금리까지 잇따라 올리고 있다고 한다. 


금융사의 윤리의식은 완전히 실종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융사들의 노골적인 약탈적 영업에 대해 소비자들의 권리의식은 너무 미약하다. 그간 언론을 통해 금융사들의 영업논리가 금융지식으로 둔갑한 채 소비자들을 왜곡된 형태로 학습시켜왔기 때문이다. 금융에 대한 소비자 감시와 권리의식이 까칠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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