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맥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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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여적]맥난민

by eKHonomy 2018. 9. 12.

요즘 한국 사회의 최대 이슈는 ‘집값’이다. 자고 나면 억대로 뛰는 서울 집값에 시민들은 분노하다 못해 허탈해한다. 정부도 대책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 하지만 급조돼 나오는 정책들은 전혀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랜 저금리 기조 속에 1100조원을 넘어선 사상 최대의 시중 부동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몰리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최근 서울 강남·강북을 가리지 않고 집값이 과열되는 양상을 보이자 지난달 26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여의도·용산 개발계획을 부동산 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전면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8월 27일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한 아파트 단지 모습. 권도현 기자

 

시중의 과잉 유동성과 이로 인한 집값 급등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 연방준비제도를 비롯한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경기 부양을 위해 금융완화 정책을 지속하면서 막대한 자금이 풀려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이 세계 63개국의 주택가격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4분기 글로벌 실질 주택가격 지수는 160.1로 금융위기 전 자산 거품이 정점을 이루던 2008년 1분기(159.0)를 넘어 통계가 시작된 200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조사대상 국가 중 집값이 가장 많이 뛴 곳은 홍콩이다. 지난 1년 동안 평균 11.8%나 올랐다.

 

좁은 땅에 높은 인구밀도로 세계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곳 중 하나인 홍콩에는 ‘맥난민(McRefugee)’도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집 대신 24시간 영업을 하는 패스트푸드점인 ‘맥도널드’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국제청년회의소 홍콩 지부가 지난 6월 조사한 결과 홍콩 내 110개 맥도널드 매장에서 최소 3개월 이상 밤을 보낸 사람들이 334명인 것으로 나왔다. 2013년 같은 조사 때(57명)보다 6배나 늘어났다. 한 매장에서는 맥난민이 30명을 넘기도 했다. 특히 인터뷰에 응한 맥난민 53명 중 57%가 취업자였다. 직업이 있어도 워낙 비싼 집값과 임대료 때문에 집을 구하지 못한 것이다.

 

2015년에는 홍콩의 한 맥도널드 매장에서 60대 여성이 숨진 채 7시간이나 방치되기도 했다. 당시 폐쇄회로(CC)TV 확인 결과 숨진 여성 옆에서 많은 이들이 햄버거를 먹었다. 흔히 보는 맥난민이려니 생각한 것이다. 한국도 24시간 패스트푸드점 등에서 밤을 보내는 노숙자나 가출청소년, 일용직 노동자 등이 없지 않다. 하지만 아직은 홍콩 같은 지경은 아니다. 한국의 ‘미친 집값’이 맥난민마저 불러올까 두렵다.

 

<김준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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