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누가 자영업을 벼랑으로 밀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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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경향의 눈]누가 자영업을 벼랑으로 밀었나

by eKHonomy 2018. 9. 13.

2017년 7월25일 문재인 정부는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다. 한국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당찬 포부를 담은 것이었다. 정부는 한국 경제가 ‘저성장 고착화’ ‘양극화 심화’의 구조적·복합적 위기상황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이어 근본적인 변화 없이 지속가능성장을 담보할 수 없다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말했다. 그러면서 2018년에 성장률 3.0%, 일자리는 36만명 증가, 고용률 67.2%, 물가 1.8%를 달성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1년여가 흐른 뒤 결과는 참담하다. 성장률은 한국은행이 지난 4월 2.9%로 내린 데 이어 10월에는 2.8%로 하향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고용실적은 더욱 열악하다. 12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 8월 고용은 3000명 증가로 지난해의 100분의 1 수준이다. 고용률은 66.5%로 전년 동기 대비 0.3%포인트 하락했고, 청년실업률은 10%로 급등했다. 아르바이트 자리도 줄었다.

 

출처:경향신문DB

 

고용 문제가 심각해진 데는 정부의 자영업 정책 실패의 영향이 크다. 정부의 자영업자에 대한 기본적인 판단은 ‘너무 많다’는 것이다. 한국의 자영업자는 680만명을 넘으며 전체 취업자의 24%에 달할 정도다. 선진국에 비해 2~3배 정도 높은 수준이다. 대통령 공약에도 ‘자영업 포화구조에 따른 과밀업종 구조개선을 위해 임금근로자로의 전환과 특화형, 비생계형 업종으로의 재창업 적극 지원’이라고 적혀 있다. 정부는 시장기능을 통해 자영업자가 저절로 구조조정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자영업자를 임금근로자로 전환시키기 위한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

 

정부는 자영업자의 정체성을 ‘소자본가’로 규정했다. 자영업자는 가맹본부와의 관계에서는 을의 입장이지만, 아르바이트 직원에는 갑의 위치에 있다. 그런데 이들 자영업자는 무늬만 자본가일 뿐 실제로는 노동자와 별반 차이가 없다. 한국의 자영업자는 자본이 부족한 상태에서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 창업을 했고, 스스로 노동을 통해 업체를 운영해야 하는 영세업자다. 영세자본가이며 노동자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지적했듯이 “자본가가 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떼밀려 자본가가 된 경우”인 것이다. 이 때문에 외부환경에 취약하고 폐업도 잦다. 정부는 이 같은 한국 자영업자의 특징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했다.

 

한국에서 ‘자영업 예비군’은 항상 시장진입을 준비하고 있다. 자영업은 공급자가 넘치는 시장이다. 구조조정이나 은퇴 후 새롭게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동차업종이나 조선업 등의 구조조정 후 자영업자가 늘었다. 지난해 650만명 수준으로 떨어졌던 자영업자는 690만명에 육박한다. 돈을 벌 수 있는 업종이어서가 아니다. 일자리를 잃고 갈 곳이 없기 때문에 뛰어드는 것이다. 자영업의 미래가 어둡다는 것을 대부분 창업자는 안다. 정부는 신규 자영업자의 진입을 막기 위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재교육도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 정책은 선언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정부는 자영업자의 역량을 강화하겠다면서 카드수수료 인하, 임대차보호법 개정, 대기업의 지역상권 진출 제한 등을 약속했다. 그러나 카드수수료는 중간에 밴사가 끼어 있는 상황에서 쉽게 내릴 수 없고, 임대차보호법은 장기간 영업권을 보장할 수 있지만 임대료까지 내리는 효과를 거두기에는 역부족이다. 상당수 자영업자는 한계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런데 이들 궁박한 자영업자에게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타격이 되었다. 그래서 빚으로 빚을 돌려막고 있는 형국이다. 올 상반기 은행에 긴급대출(대출119)을 신청한 자영업자가 큰 폭으로 늘어난 것은 그 때문이다. 상반기 ‘대출119’에 신청한 금액은 지난해 상반기보다 40.0% 급증했다. 시중은행의 상반기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213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 증가했다.

 

정부는 내년 자영업자들에게 7조원 이상을 지원할 계획이다. 쓰러지는 자영업자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과밀한 자영업을 어떻게 구조조정할 건지에 대한 대책은 찾아볼 수 없다. 정부는 출범하면서 국가개조를 하겠다며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정부가 2018년 달성하겠다며 발표한 희망찬 경제지표는 휴지조각이 됐다. 그런데 불과 1년도 안돼 물거품이 된 약속에 대한 통렬한 자책과 반성은 없다. 대신 지금의 어려움은 경제가 호전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명현현상이니 참자고 한다. 그럴 거면 당초에 국가개조의 개혁은 어려운 과정이니 시민들도 참고 견뎌나가자고 동참을 호소했어야 한다. 왜 정책 실패의 고통을 시민에게 전가하는가.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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