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재협상, '거짓말'의 재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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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재협상, '거짓말'의 재협상

by eKHonomy 2010. 11. 17.

왜 그럴까, 유독 한미FTA와 관련해서는 거짓말이 잦다.

첫째, 2008년일 게다. 미국의 재협상요구를 '차단'하기 위해 우리 국회가 먼저 비준동의를 완료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볼썽 사나운 추태를 연출해 가면서까지 국회 통외통위는 한미FTA 비준동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차단'된 바 전혀 없음이 어제 16일 통상교섭본부장의 국회발언을 통해 완벽히 증명되었다.

둘째, 통상교섭본부장이 한미FTA 협정문에 점 하나도 못 바꾼다고 호기를 부린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점은 고사하고 아예 통째로 바꾸게 생겼다. 이제 와서 청와대는 이를 두고 '협상전략'이었다고 한다. 자살골 먹고 "다 작전이야"라고 말하는 꼴이다.

론 커크 미 무역대표부 대표(오른쪽)가 9일 오후 한·미 FTA 통상장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도렴동 외교통상부 청사에 들어서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셋째, '재협상'이 아니라고 했다. 그저 실무협의에다 추가협의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래서 정부측은 설명하기를 '협정문 전부를 바꾸면 재협상이요, 조금만 바꾸면 추가협상이다. 그래서 이 번 것은 추가협상이다'라고 설명한다. 듣다 듣다 별 소릴 다 들어 본다. 협정문 전부를 바꿔도 재협상이요, 조금만 바꿔도 재협상이다.
더이상 이런 '국내용' 멘트로 시간 낭비 하지 않았으면 한다. 비행기 타고 우리 땅만 벗어나면, 이를 두고 다들 재협상이라고 부른다.

넷째, 쇠고기는 협상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웬일인가, 여기 저기 여러 신문보도들, 특히 그 중 하나는 11월 8일 심야에 긴급히 관계장관들이 모여 앉아 쇠고기를 갖고 심각하게 회의를 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미국 측 보도를 봐도 미국 협상단이 쇠고기문제를 제기했다고 했다. 귀신이 곡할 노릇 아닌가.

다섯째, 통상교섭본부장은 국회에 출석해서 자신이 아는 한 '독소조항'이 없다고 말했다.
이 대목에 와서는 나도 말 문이 막힌다. 협상 당시 미국에 퍼다준 그 수많은 독소, 불평등 조항이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정부관료들도 처음엔 이런 조항들에 대해 격렬히 반대한 정황들이 있다. 예컨대 당시 법무부는 간접수용, 투자자-정부 제소제 같은 것에 분명히 반대했고, 보건복지부도 허가-특허 연계 같은 조항에 반대했다. 그러나 협상이 끝나자 이 모두를 긁어 모아 '제도선진화'라고 둘러댔다.
정말 '영혼'이 없긴 없나보다. '영혼'이 없으면, 자기 말이 거짓말인지 아닌지 전혀 모를 수 있다. 독소조항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정리하기로 하자.

16일 통상교섭본부장은 국회에서 미국이 요구한 것들에 대해 '사후' 보고를 했다. 그 내용을 보고 나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아마 처음 이를 접했을  때 우리측 통상관료들도 꽤 당혹해 했을 듯 싶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그저 그 항목만 나열하지, 내용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 못한 듯 싶다.

한미FTA 협상을 통털어 가장 중요한 대목이 자동차임은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 경제에서, 그리고 대미 무역에서 자동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한미FTA 자동차협상은 크게 관세, 비관세, 분쟁해결로 나눌 수 있다. 협상 결과 미국이 3천cc이하 승용차 수입관세 2.5% 즉시, 3천cc이상은 3년뒤, 픽업 관세 25%는 10년동안, 우리는 자동차 수입관세 8%를 즉시철폐하기로 했다.
그 대가로 우리는 비관세부문에서 세제, 환경, 안전, 기술 기준에서 미국의 모든 요구를 들어 주고, 분쟁해결절차에서 스냅백(철폐관세 2.5% 환원조치)과 같은 전대미문의 독소, 불평등조항을 모조리 수용했다.
내가 추정하기로 자동차관세 2.5% 철폐를 위해 다른 부분, 예컨대 의약품, 농산품, 금융 등에서도 상당한 무엇이 넘어갔을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로선 확인할 길이 없다.

그렇다면 당시 미 무역대표부는 왜 이것을 받아 들였을까. 당시 무역대표부 부대표는 의회 증언에서 이렇게 답한다. '얼마 안 있으면 한국차의 미국 내 현지 생산비율이 70%에 달할 것이기 때문에 실제 우리가 손해 보는 것은 없다'는 것이 요지다.
예컨대 2.5% 관세철폐로 인한 우리의 기대이익이 10이라면 7이 곧 자동소멸될 거란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동차와 관련해 강력한 요구안을 무역대표부에 제출했던 미 의회는 즉각 엄청난 불만을 제기했고, 그 때부터 재협상론이 제기되기 시작한다. 그 때가 늦어도 2007년 6월이다.

최근 나는 당시 미 의회가 무역대표부에 전달한 서한을 입수했다. 그 내용을 확인해 보니, 비관세에 관련된 의회 측의 모든 요구는 모조리 한미FTA 협정문에 이미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의회제안 중 부시 행정부가 거부한 것이 바로 관세부 분이다. 당시 의회는 2.5% 관세의 '협정문상의 최장기간 또는 15년 뒤' 철폐를 요구했고, 그 사이에는 일종의 인센티브로 미국차 수출물량이 천대 증가하면 그 몫만큼은 면세해 주자는 제안을 했다.

이번 재협상을 놓고 처음 미국 소식통은 의회 측이 관세 관련된 이 요구를 접은 것처럼 언급했고, 나 역시 크게 비중을 두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16일 본부장의 국회보고에서 이 부분이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통상교섭 본부장은 미국 측이 2.5% 관세 철폐시기를 과연 몇 년 뒤로 미루자고 요구했는지 그 자세한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아마 10년은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2.5% 관세 즉시철폐는 저들 통상관료들이 말하는 '이익균형론'의 핵심근거다. 나로서는 한 번도 그런 허황된 주장에 동의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일단 여기서 더 상론하지는 않겠다.

어쨌든 정부 측은 2.5% 철폐를 근거로 대미 자동차 수출 경쟁력이 엄청 강화될 것이다, 한미 FTA는 '성공한' 협상이다, 협상은 받는 것이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주는 것도 있는 것 아니냐 등등 그 간 수많은 말들을 해왔다.
저들에게 2.5% 즉시 철폐는 그야말로 한미FTA의 알파요, 오메가요 사실상 모든 것이다. 바로 그런데 미국측은 이것을 이제 되물리자고 들고 나온 것이다. 가져갈 것 다 가져 가면서, 대신 떡 하나 물려 주고 갔는데 3년 뒤에 다시 찾아와 그거 게워내라는 격이다.

미국이 이번 재협상에서 요구한 수많은 것 가운데, 2.5% 관세철폐를 물리자는 것은 사실 치명적인 요구다. 정말 그리 된다면 - 물론 신기루에 불과하지만 - '이익균형'은 고사하고, 우리에게 남는 것은 빈 깡통밖에 없게 된다. 한미 FTA를 그래도 하자는 것은 경제 '청부살인업자'(hit man)의 매국행위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게다가 미국측은 EU와의 동등대우(parity)를 내세우면서 한미 FTA 협정문에 있지도 않는 관세환급조항, 자동차만의 특별 세이프가드 등 자신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항들을 더 얹어 달라고 요구한다.

알다시피 우리 나라는 세계 최대 경제권인 미국, EU와 동시에 FTA를 체결한 전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이다. 이제 협정문이 발효도 채 되기 전에 그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미국 측에 뭐 새로운 양보를 하게 될 경우 다음에는 틀림없이 EU가 덤벼들어 더 내놓으라고 할 게다.

현재 문제가 되는 것은 쇠고기 뿐만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 자동차는 더 심각하다. 그렇다면 방법은 뭘까.

머잖아 '깡통계좌'가 될 게 분명한 한미 FTA를 기꺼이 폐기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도 아쉽다면 한미 FTA 전면 재협상이 그나마 합리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도 지금의 협상팀은 곤란하다. 고양이한테 생선가게를 맡길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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