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카테고리의 글 목록 (45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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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세상404

[경제와 세상]졸 움직이기와 거래비용 류동민 | 충남대 교수·경제학 “고국에 계신 국민 여러분, 그리고 해외동포 여러분….” 비장감에 젖은 아나운서의 멘트가 전파를 타기 시작하면 우리는 정체모를 전율을 느끼며 주먹을 힘껏 쥐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자면 글로벌 스포츠 수준에서 한참 변방에 위치하는 고만고만한 대회들, 이를테면 어느 나라 국왕배 쟁탈 축구대회에 출전한 ‘태극전사’들을 응원하기 위해 우리는 그렇게 모였다. 어쩌다 강팀이라도 이기는 날이면 “대한남아 가는 길에 승리뿐이다”류의 가사에 소비에트 군가타입의 곡조를 섞은 노래가 울려 퍼지면서 화면에는 국가대표 선수의 얼굴 하나하나가 펄럭이는 태극기를 배경으로 흘러 나왔다. 라디오 중계를 들을 때 혹시 경기에 지면 십중팔구는 “일방적인 우세를 펼치고도 홈팬의 광적인 응원과 심판의 편파적인 .. 2013. 3. 6.
[경제와 세상]‘반값 집세 운동’이 필요하다 정대영 | 송현경제연구소장 반값 등록금 운동은 얼마 전까지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으며 대선 공약에 반영돼 곧 일부라도 실행될 것 같다. 그러나 반값 등록금은 대학생에게는 절실한 문제지만 국민경제 전체로는 우선순위의 정책은 아니다. 과도하게 높은 대학진학률, 일부 대학의 부실 등을 생각할 때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살 만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나 대학의 구조조정이 우선돼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기초노령연금 확대도 빈곤 노인층을 위해서는 절박한 정책이지만 역선택, 도덕적 해이 등과 함께 세대간 갈등을 유발하는 문제를 갖고 있다. 아파트, 원룸 등 임대수입이 있으면서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았던 노인들이 큰 혜택을 볼 것이다. 이들 중 일부는 기초노령연금이 필요없을 정도로 잘살고 .. 2013. 2. 20.
[경제와 세상]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류동민 | 충남대 교수·경제학 최근 신문이나 인터넷에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라는 말이 많이 오르내린다. 아마도 선거국면에서는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던 공약들의 실행 가능성과 의지가 문제되기 시작하면서 의미 활용도가 부쩍 높아진 모양이다. 무릇 세월을 이겨낸 잠언은 촌철살인의 진리를 갖고 있기 마련이지만, 세상 모든 일이 ‘촌철’만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다층적 구조를 갖는다는 사실, 그 또한 진리일 것이다. 내 마음은 거꾸로 악마는 디테일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이 디테일에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만드는 편견으로 구축된 강고한 틀에 있다는 쪽으로 기울어진다. 움베르토 에코는 에서 날조된 거짓이 어떻게 유포되어 진실로 둔갑하게 되는가를 보여준다. 반유태주의 선전을 위해 만들어낸 거짓 문서 안에.. 2013. 2. 6.
[경제와 세상]진보의 딜레마 학창시절 어느 가을이던가, 수업도 작파하고 바둑에 미쳐 지낼 무렵의 일이다. 친구 하숙집에서 법대 신입생을 만나 두 시간이 넘는 혈투 끝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집에 돌아와 누웠는데 잠은 오지 않고 천장에는 희고 검은 돌만 아른거리기를 몇 시간. 마침내 내가 이길 수 있었던 결정적 순간을 찾아내기에 이른다. 다음 날 학교 바둑실에 죽치고 앉았다가 만난 법대생에게 회심의 복기를 해보였더니, 이 녀석, 너무도 쿨하게 “형이 이긴 바둑 맞네요”라는 한 마디만 던지고 총총히 사라짐으로써 지독한 불면의 밤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보수와 진보 진영의 총력전이었던 탓일까? 유독 뼈아픈 회한과 힐링의 복기가 사방에 차고도 넘친다. 내가 읽은 것 중에 압권은 아무리 그래도 첫사랑을 잃었을 때만큼이야 할 것이며 .. 2013. 1. 9.
[경제와 세상]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경제학 류동민 | 충남대 교수·경제학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12월의 아침, 나는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한 마음을 부여안고 대학가 뒷골목의 카페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어느 소설에서 “겨울 햇살이 뒹구는 거리는 온통 죽음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라고 묘사된 바로 그날이었다. 직업적인 경제학자의 길로 들어선 뒤 내가 겪어야 했던 좌절은 크게 두 가지 종류의 것이었다. 하나는 같은 전공분야의 논문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어도 무슨 말인지조차 모르는 경우에 생겨났다. 내게 주어진 달란트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차츰 인정할 줄 알게 되자 다행스럽게도 그 좌절은 조금씩 줄어갔다. 그러나 다른 하나, 경제학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변혁하는 교리를 익힌다 한들, 몇 년마다 한 번씩 푸닥거리처럼 치르는 정치권력 게임의 .. 2012. 12. 12.
[경제와 세상]말하는 이와 듣는 이 류동민 | 충남대 교수·경제학 장 자크 루소의 철학소설 에서 귀족의 딸인 쥘리와 그녀의 가정교사인 생 프뢰는 신분의 굴레 때문에 맺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말미암아 오랜 시간에 걸쳐 괴로워한다. 고통이 극적으로 해소되는 것은 쥘리의 남편인 현자 볼마르가 생 프뢰를 자기 집에 함께 살게 하면서 관능을 벗어난 사랑과 우정의 미덕을 실현하는 일종의 이상향 속에서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슬픈 사랑의 이야기들은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사랑, 사랑하지만 차마 말할 수 없는 사랑에 관한 것들이다. 보이지 않는, 바꿔 말해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듯이 보이는 사람, 말할 수 없고 말을 걸어도 들리지 않는 사람. 실은 여기에서 모든 권력관계가 출발하며 거꾸로 권력관계는 말할 수 있음과 없음을 구별하는 원리로 작동한다. 연.. 2012. 11. 14.
[경제와 세상]경제민주화, 배가 불렀나? 류동민 충남대 교수·경제학 워낙 커피를 즐기는 데다 약간은 소음이 있는 분위기를 선호하다보니 부쩍 카페에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다가 문득 커피전문점이 나름대로 민주적 공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카푸치노 한 잔 값이 알바생의 최저 시급보다 많을 정도로 여전히 비싼 가격은 흠이지만, 깔끔한 실내장식까지 갖춘 곳에 이른바 ‘물 관리’ 당하느라 쫓겨날 걱정 없이 청춘남녀와 한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어딘가? 서양의 커피하우스가 민주주의를 꽃피운 정치토론의 장이었고 그래서 권력자들이 가장 싫어하던 존재 중의 하나였다면, 한국은 제국주의 열강의 대립 속에 외국대사관으로 피신하는 굴욕을 겪던 바로 그 순간 고종이 마시기 시작했다는 기록은 서구적 근대성 일반이 한국 땅에서 겪.. 2012. 10. 17.
[경제와 세상]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 류동민 | 충남대 교수·경제학 지나가버린 사랑에 대한 그리움, 그것은 그저 사랑의 그림자, 그러므로 그리움 그 자체에 대한 그리움에 다름 아닐 것이다. 정신분석학의 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여기에는 반드시 ‘도착’, 즉 뒤집혀짐이 따라온다. 욕망의 대상과 욕망 그 자체가 뒤섞여 분간할 수 없게 된다. 모든 집착은 오히려 진정성으로 받아들여진다. 더욱 나쁜 것은 이러한 ‘진정성’ 자체에 대한 그 어떤 합리적 의심도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도착이 개인적 감정의 문제라면, 그 해결 또한 결국엔 개인의 몫일 것이다. 물론 개인의 문제도 그것을 규정하는 사회관계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은 우리가 매일 텔레비전에서 만나는 막장드라마들조차 끝없이 변주하며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정말로.. 2012. 9.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