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 횡포, 내 잘못이라 당연한 줄 알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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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제윤경의 안티재테크

“사채 횡포, 내 잘못이라 당연한 줄 알았죠”

by eKHonomy 2012. 9. 16.

‘목돈 빌리고 푼돈으로 갚자’는 광고 문구를 보면 기분이 어떨까. 당장 돈이 급한 사람에게 이만큼 자극적인 말은 없을 것이다. 이 말은 불법 일수 대출 광고지에 실린 것이다. 이 광고지를 보고 희망이 솟았다는 대부업 피해자가 있다. 자영업자인 이 피해자는 매출이 감소해 카드 여러 장을 돌려막고 있었다.(민주통합당 최재천 의원실 민생연대 상담 사례자)


 대부분의 대부업 이용자는 카드빚 돌려막기 끝에 대부업 대출을 선택한 경우다. 특히 자영업자는 소득 불안정이라는 위험과 그 위험으로 인해 금융권 접근이 어렵다는 두 가지 요소 때문에 카드 대출에서 금세 대부업 대출까지 빚이 빠른 속도로 악성화된다. 이 피해자는 카드사의 연체 독촉 전화에 시달리던 중 목돈 빌리고 푼돈으로 갚으라는 광고 문구를 보고 일수 사채를 이용하게 됐다. 500만원 원금에 이자 100만원, 금액만 놓고 보면 연 20%라는 대부업자의 말이 맞는 듯하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그들이 노리는 수법이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은 수에 밝지 않다. 금융의 위험성, 금융 계산법을 배운 적이 없는 대다수 사람의 입장에서는 당연하다. 겉으로 드러난 20% 이면에는 매일 원리금 7만5000원씩 80회 상환이 숨겨져 있다. 결국 그 대출은 80일 동안 20%, 연 환산 이자율로는 296.38%(선이자 떼고 440만원이 입금되었으므로 실제 대출금은 440만원)이다. 그러나 여전히 500만원의 목돈을 급한 상태에서 요긴하게 쓸 수 있게 된 것에 비해 매일의 원리금 7만5000원은 푼돈임이 분명하므로 매력적으로 보인다. 


여기에 숨어 있는 또 하나의 야만적 비밀은 바로 하루라도 연체하면 연체이자가 별도로 붙는다는 점이다. 심지어 3회 이상 연체하면 다른 고리 대부업 대출을 강제로 빌리게 해서 앞의 대출을 갚게 만든다. 500만원으로 시작된 고리 사채로 인해 피해자는 집도 차도 모두 잃고 심지어 야반도주를 하고 병마와 싸우게 되었으며 이혼 직전까지 내몰렸다.


서울지하철 3호선 객차 출입문에 한 사채업체의 불법광고 스티커가 붙어 있다. (출처: 경향DB)


가장 충격적인 것은 피해자가 야반도주 직전 긴 고민 끝에 경찰에 신고했을 때의 일이다. ‘아줌마, 비싼 돈을 빌려 쓰고선 우리한테 어쩌라고요.’(경찰) 바로 이것이 ‘킬러 자본주의’라는 대한민국의 야만적 현실이다. 이 피해자와 함께 모 방송국에 출연했다. 연예인 출연자들은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느냐” “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았느냐” “왜 맞서 싸우지 않았느냐”라는 질문을 분노에 차서 쏟아냈다. 피해자는 “나는 그 모든 것이 내가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내가 당하는 것이 당연한 줄로 알았다”고 답했다.


바로 이 대목이 가계빚 1000조원 시대로 잠재적 파산자가 넘쳐나는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과도한 채무자 책임 의식은 불법에 대항하지 못하게 만들고 심지어 그 불법적 고리 사채 영업과 잔인한 채권 추심을 단속하고 벌해야 하는 공권력조차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한다. 한때 동대문에서 가게 4개를 운영할 만큼 치열하게 살던 사람이다. 우리 사회의 대단히 중요한 ‘인적 자산’인 그 피해자가 이제는 공황장애까지 앓고 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의 법 체계는 여전히 이런 피해자를 보듬어 안지 못한다. 민주당에서 최근 가계빚의 심각성에 대해 여러 토론회와 공청회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눈치를 본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지금 채무자에게 우호적인 환경을 만들었다가 자칫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을까 우려하는 듯하다. 통합진보당은 여전히 패권에만 열정적이다. 정치권에서 파산과 회생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고 불법 채권 추심을 뜯어고쳐야 할 중요한 시점에 법을 고칠 권력을 지닌 이들은 정치논리에 묶여 있다. 그러는 사이 지금도 빚 때문에 최소한의 인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채무자들이 자살률 1위라는 비극을 반복시킬 위험에 내몰려 있다.


<제윤경|에듀머니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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