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수수료·월세·대출이자…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은 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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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제윤경의 안티재테크

은행수수료·월세·대출이자…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은 비용’

by eKHonomy 2012. 9. 2.

제윤경 | 에듀머니 이사


<노동의 배신>의 저자 에런 라이크는 웨이트리스, 청소부, 판매원 등으로 직접 노동을 체험해 저임금 노동현장 실태를 고발한다. 책의 원제는 ‘Nickel and Dimed’. 번역하면 ‘야금야금 빼앗기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녀는 저소득 계층을 향한 따가운 시선에 대해 구체적으로 반박한다. ‘노력하지 않기 때문에 가난하고, 절약하지 않기 때문에 빚을 지면서, 정부가 제공하는 공짜 복지만 낭비한다’는 인식에 대해서 말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한 현실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비용을 지불한다. 죽도록 일하지만 늘 가난하고, 절약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절약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환경이다. 


(출처: 경향DB)


 이는 한국도 다르지 않다. 가난은 삶의 기본적인 요소들에서 소외돼 있는 사람들의 현실이다. 전세 보증금이 없어 턱없이 높은 월세를 부담해야 하고 육체노동을 하거나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하기 때문에 의료비용이 많이 든다. 


보일러 시설이 열악한 주거에 사는 경우가 많아, 겨울이면 전기난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어 전기요금 폭탄을 맞기도 한다. 초등학생을 키우는 어느 한부모는 집에 컴퓨터가 없어 숙제 때문에 아이를 PC방에 보내야 할 때가 많다고 한다. ‘금융’도 가난한 사람에게 더 큰 부담을 주는 구조이다. 


금융 거래가 많지 않기 때문에 모든 금융 이용에 고스란히 수수료를 부담한다. 거래규모가 일정 이상인 정규직 월급 소득자나 고소득계층에게는 이체와 출금 등의 각종 수수료를 면제해 주지만 저소득층은 예외다. 심지어 그들이 일하는 일터에서는 은행 업무시간 내 금융 이용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부담해야 하는 수수료 비용도 더욱 많아진다. 가정에 컴퓨터가 없기 때문에 인터넷뱅킹을 이용하기도 어렵다.


신용을 이용하는 경우 비용의 역차별은 더욱 커진다. 신용등급이 낮기 때문에 이자 비용이 상대적으로 낮은 은행권 대출은 이용할 수 없고 급전이 필요하면 카드사 대출에 의존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도 소득이 낮아 결국에는 연체하기 일쑤고 연체이자까지 자주 부담해야 한다. 연체가 반복되면 카드사로부터 협박에 가까운 체납액 결제 독촉을 받게 되고 그것을 피하기 위해 대부업 대출을 이용해 이자 폭탄까지 끌어안게 된다.


미국의 경우 의료복지조차 전무하기 때문에 한국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잔인하다. 그러나 한국도 에런 라이크의 책 원제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야금야금 빼앗는’ 사회구조이다. 현재 저소득층의 빚은 악성 채무이면서 동시에 소득과 비교해 도저히 갚을 수 없는 규모이다. 하위 20%인 소득 1분위 저소득층의 대출이 급격히 팽창해 이들의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이 지난해에 무려 201.7%까지 상승했다. 평균 2년 정도의 소득을 모두 쏟아부어야 대출 원금을 갚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법원의 파산 판례를 보면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저소득층의 빚은 파산 면책에서도 소외 대상이다. 관례적으로 3000만원 미만의 소액 채무에 대해 보수적인 면책 결정을 하고 최근 6개월 이내의 부채가 있는 경우 파산 면책에서 제외하기 때문이다. 돈이 없어 파산을 신청하는 이들에게 파산 관재인을 선임하게 만들고 그에 따른 비용 30만원도 부담시킨다.


결국 죽어라 일하지만 월세와 약값, 이자 내고 나면 남는 돈이 없는 월급날을 매달 경험하게 된다. 열심히 노력하면 지금보다 나은 내일을 살 수 있으리란 희망은 사라지고 만다. 역경을 극복하고 더 나은 미래를 성취하겠다는 동기가 하루하루 잠식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삶의 동기도 야금야금 빼앗기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 저소득층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바로 빚으로부터 벗어나는 것과 적절한 복지 서비스 공급이다. 그들의 가처분소득을 늘리는 일은 내수시장을 위해 도움이 된다. 뿐만 아니라 그들 역시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인적 자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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